매일신문

군사 대국화 야욕이 부른 참극

지난 12일 침몰한 러시아 핵 잠수함 사고(본보 15일자 보도)가 끝내 참극으로 막을 내렸다. 사고 10일만이던 21일에야 잠수함의 문(해치)을 열었지만, 118명 승무원은 전원 숨진 채 발견된 것.

◇처참한 종말=전원 사망 확인 뉴스는 21일 밤 10시(이하 한국시간) TV들을 통해 애도 음악과 함께 전해졌다. 사체 인양에 앞으로 한달이 걸리며, 선체 인양은 계획 수립에만도 한달이 걸릴 것이라고 군 관계자가 전망했다.

이에 앞서 노르웨이 심해 잠수팀은 이날 오후 1시쯤 잠수함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사망자 가족들은 그 전에 함대 사령부가 있는 무르만스크에 도착해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자 오열하며 푸틴 대통령을 원망했다. 러시아 정부는 사망자 1인당 5만4천 달러를 지급할 예정이다.

◇사고 경위=사고가 난 쿠르스크호는 100m 깊이의 바다에 가라 앉아 있다. 침몰 원인은 외부 물체와의 충돌로 인한 폭발로 여겨지고 있으며, 무엇과 충돌했는지에 대해서는 공방이 치열하다. 러시아의 한 군 간부는 영국 잠수함과 충돌했다고 주장했다.

충돌 이후 잠수함에 있던 어뢰 3, 4발이 폭발, 선체에 1m 크기의 구멍이 생겨 앞 부분부터 물이 차기 시작함과 동시에 승무원 절반 가량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조 노력=사고 소식은 한국시간 12일 새벽 5시쯤 군계통에 보고됐으며, 탐색조는 13일 오전 9시30분쯤 선체를 발견해 냈다. 그 뒤 러시아는 14일부터 22척의 군함을 파견해 자체 구조에 매달리면서 외국의 지원 의사를 거절했다. 그러나 역부족임이 드러나고 세계의 여론이 들끓자 16일에야 뒤늦게 방침을 바꿔 영국.노르웨이 등의 지원을 수용키로 했다.

외국의 구조 참가는 20일 노르웨이 잠수부들을 시작으로 개시됐다. 수중 460m까지 하강할 수 있는 영국의 구조용 잠수정 LR5도 19일 도착했으나 작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고통=사고 경험자들에 따르면 사고 첫 날에는 공기가 탁해지면서 두통이 일반화되고 숨이 가빠지며, 2, 3일 째부터는 이산화탄소 호흡량이 늘어나면서 머리가 아파 침대 신세를 지게된다.

1939년 미국 잠수함 침몰 때 36시간만에 구조된 칼 브라이슨(82)씨는 "추위와 탁한 공기.어둠.두려움이 기억나는 전부"라고 회상했다.

1950년대에 잠수함에 탑승했다가 구소련 해군 추적으로 3일간이나 수면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사고 아닌 사고를 당한 클리포드 스미스(63)씨는 "이틀째 아침부터 몸이 마비되는 병사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러시아 해군사관학교 교관 코스토프 제독은 "바렌츠해의 수온으로 잠수함이 거대한 냉장고로 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 시대에 들어서면서 미 해군에서만 2척의 잠수함을 잃었지만 모두 해저 3천m 이상의 깊은 바다에 침몰, 사고 직후 수압 때문에 폭발함으로써 구조활동을 벌일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목숨이 중한가 기밀이 중한가?=러시아가 외국의 지원을 물리치고 스스로 구조할 수 있다고 큰소리 쳤던데는 승무원들을 희생시키면서라도 군사 기밀을 보호하겠다는 욕심이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침몰 잠수함은 최신형이어서, 외국의 구조 요원들이 관련 기밀을 빼내 갈 수 있다는 것.

여기다 푸틴 대통령은 사고 당일 곧바로 "대부분 승무원 사망"이라는 보고까지 받고도 이날 시작된 휴가를 계속했을 뿐 아니라, 사고 발생 사실 조차도 이틀 지난 14일에야 일반에 공개했다.

이때문에 비난이 러시아 자체에서는 물론 전세계에서까지 폭발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25분간에 걸쳐 전화로 푸틴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잠수함은 1995년 취역했으며, 24기의 핵탄두를 탑재하고 500m 깊이 바다에서 120일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러시아의 한계=러시아가 자체 구조에 실패하자 "경제 규모는 벨기에 정도에 불과한 경량급이면서도 세계 군사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 욕심을 부리는 불균형과 헛된 야망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라는 분석이 강력히 제기됐다.

미국은 연간 군사비가 2천800억 달러에 달하지만, 러시아는 그 2% 밖에 안되는 겨우 60억 달러를 갖고 맞먹겠다고 덤비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

이때문에 러시아 군부 내에서도 군비를 축소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갈등이 많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핵의 바다=쿠르스크호가 침몰한 바렌츠해는 핵 폐기물이 대량 적체돼 있는 '핵의 바다'. 때문에 체르노빌 원전 폭발과 같은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전세계 원자로의 18%가 러시아 북해함대의 작전지역 부근에 있으며, 이 함대는 67척의 핵잠수함과 2척의 핵 추진 순양함을 갖고 있고, 여기에는 119기의 원자로가 설치돼 있다. 그 외에도 퇴역 잠수함 52척에도 원자로 101기가 있어, 인근 발전소까지 포함할 경우 일대에는 총 240기의 원자로가 몰려 있는 상황이다.

쿠르스크호에도 2기의 원자로가 실려 있어, 폭발 및 오염 위험이 제기돼 있다. 朴鍾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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