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정호 칼럼-남북교류는 축제 아닌 일상으로

10년전에 중국의 옌지(延吉)를 거쳐 처음 백두산에 등정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동행한 어느 교수가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서 오면 하루도 안 걸리는 백두산길을 베이징(北京)으로 해서 이렇게 돌아와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어서 통일이 돼야한다"고 비분강개하는 걸 보았다. 그 말에 일행 모두가 동의.동조하는 눈치였으나 나는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내 나름대로 반론을 펴보았다. "백두산을 등반하기 위해 베이징에도 들러 자금성(紫禁城)까지 관광할 수 있으니 우리야 얼마나 좋은 팔자요! 통일이 속히 되어야 한다면 우리가 백두산을 보다 빨리, 보다 싸게 관광하기 위해서보다 북한땅에 살면서 백두산 관광은 그만 두고 마음대로 국내여행이나 국내이주도 못하는 북한동포 때문이 아니겠소?"

내 반론엔 그러나 별로 동조해 주는 사람이 없어 나는 머쓱하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비단 쉬 될 것 같지도 않은 남북통일의 목적이나 필요성만이 아니다. 금년 6월 이후 갑자기 활성화되고 있는 남북화해나 남북교류의 경우에 있어서도 내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평양의 양 김(金)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에서는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서울을 방문하여 공연했고 그 뒤를 이어 평양교예단의 방문공연이 있었다. 6.15 공동선언 발표 후에는 남한의 언론사 사장단 50명의 북한 초청 방북이 있었고 그리고나선 곧 평양의 조선국립교향악단 서울공연이 꼬리를 물었다. 머지않아 남북한에서 각각 100명씩을 선발하여 백두산과 한라산의 교환관광사업도 추진될 모양이다. 모두 다 좋은 일이요, 얼마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획기적인 일이다. 갈라진 겨레가 한 핏줄임을 확인하고 갈라진 국토가 다름아닌 조국의 강토임을 확인할 수 있는 감격스런 축제적인 행사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내 마음의 한 구석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운치 않은 의문이 일곤한다. 이 화려하고 값비싼 초청방문이며 초청공연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보다도 더욱 근본적으로 남북화해며 남북교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한국의 대북정책은 곧잘 옛 서독의 동방정책을 본보기로 하고 있다고들 한다. 과연 그런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서독의 동방정책은 동독의 소비에트체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서독의 가족친지도 찾아볼 수 없는 이름없는 동독주민을 우선 시야에 넣고, 1차적으로 그들을 찾아가보고 그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의 북방정책은 힘없는 일반국민보다 어딘가 힘있는 엘리트 계층을 위한 남북화해.남북교류를 서두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1천만 이산가족이 50년 분단의 경계선을 넘어 삶의 황혼길에 마지막 핏줄기를 찾아볼 기회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판에 남북쌍방이 힘에 겨운 엄청난 돈을 들여 악단의 초청공연을 벌이고 관광단교환부터 먼저 꼭 해야하는 것인가. 민족이 하나됨을 확인하는 길은 불꽃놀이처럼 화려하지만 허망하게 사라지는 축제판이나 잔치판을 통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같은 핏줄끼리, 같은 겨레끼리 언제 어디서나 찾아보고 만나보는 '축제' 아닌 '일상'을 통해서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금력의 주변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힘없는 보통사람도 남북을 왕래하며 서로 찾아보고 서로 나눔을 줄 수 있을 때이다.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수십.수백만의 서독시민들은 동독에서 쉽게 구하지 못하는 값싼 네스커피나 초콜릿 등을 사서 동독의 친지를 방문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들의 남북교류.이산가족 상봉은 그에 비해 너무 사치스럽고, 허식.허영이 많다고 한다면 잘못일까.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빌리 브란트가 케네디 형제에게 배웠다는 열쇠맡 '컴패션(compassion)', 남의 고통을 같이 괴로워하는 마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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