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들의 봉사활동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내신성적과 대학입시에 반영되기 때문에 학생들로서는 반드시 일정 시간의 봉사활동 확인서가 필요하지만 관련기관들은 학생들의 시간 때우기식 봉사활동으로 업무에 오히려 방해를 받을 지경. 이번 여름방학 동안에도 봉사활동거리를 찾는 학생들과 이들을 물리치려는 기관들의 신경전이 적잖이 벌어졌다.
▨실태
지난 95년 중고생들에게 연 50시간의 자원봉사활동을 하게 한다는 방침이 발표되자 복지시설이나 봉사활동 관련 기관들은 흥분에 들떴다. 대구지역 중고생만 해도 20여만명. 이들이 봉사활동에 나선다면 대구 전역이 들썩거릴 정도의 파장이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복지시설, 봉사활동 단체 등은 초기 학생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모든 학생들을 받아들이기에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대다수 학생들은 봉사의 기본적 의미조차 알려 들지 않은 채 시간을 채우는 데만 관심을 쏟았다.
다음으로 학생들의 봉사활동 대상이 된 곳은 동사무소나 우체국, 경찰서 등 관공서. 잔심부름 정도를 빼면 특별히 학생들의 도움을 받을 만한 일도 없지만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에 확인서가 필요한 학생들을 외면하지는 않고 있다.
최근 생긴 형태는 지역사회 참여활동이다.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 봉사단. 자기가 사는 아파트 단지내 청소를 하거나 놀이시설, 화장실 등을 관리하는 일이다.
이처럼 봉사활동을 할 만한 기반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현실로 인해 봉사활동 시간도 당초 연 50시간에서 갈수록 줄어 올해는 20시간이 됐고 내년부터는 학교 내 10시간, 교외 10시간으로 더욱 줄어든다.
▨문제점
봉사활동이 내신성적과 대학입시에 직결되다 보니 어떻게든 시간만 채우면 된다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힘든 일보다 편한 일을 선호하고 3D성 활동은 아예 근처에도 가려 하지 않는다. 남을 돕는 일의 참된 의미와 보람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봉사활동 제도가 오히려 학생들의 그릇된 봉사활동 의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보육시설 한 관계자는 "정작 손이 달리는 힘든 일을 시키면 어지간해서는 하려 들지 않다가 쓰레기를 줍거나 잡초를 뽑으며 한두 시간 보내고 확인서를 써달라고 해 기가 막힌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봉사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복지시설이 학생들의 발길을 가장 먼저 막아버린 것도 이 때문이다.
업무처리에 바쁜 관공서들은 학생들에게 자리만 제공할 뿐 서류정리나 심부름 외에는 딱히 시킬 만한 일도 없어 시간이 지나면 확인서를 끊어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한 동사무소 직원은 "방학 때 학생 몇 명에게 확인서를 떼줬더니 금새 소문이 나 학생들이 몰려드는 통에 곤욕을 치렀다"고 말했다.
2002년에는 전국 177개 대학 중 150개 대학이 봉사활동 성적을 입시에 반영하고 대학에 따라 반영비율이 높거나 아예 봉사동 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학과까지 있다 보니 무조건 봉사활동 시간을 늘려놓고 보자는 학생들도 생겨나고 있다.
▨대책
학생들에게 무턱대고 봉사활동을 요구할 게 아니라 사회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복지시설, 관공서 외에 환경, 지역사회개발 등 다양한 영역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또한 한번 본인이 선택해 봉사활동을 시작하면 마무리될 때까지 해당 기관에서 활동상황을 관리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아무 때나 찾아가지 않도록 풍부한 프로그램과 자세한 일정을 제공하고 선택한 후에는 성실하게 활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청소년자원봉사센터 조여태씨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에 따라 체험을 통해 활동하다 보면 봉사활동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재미를 찾는 학생들이 많다"면서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확충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봉사활동이 학습의 연장이 될 수 있도록 학교와 학부모들도 더욱 세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金在璥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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