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과장)

월요일 아침. 직장인들은 월요병으로 출근하기 힘들다지만 나는 전투에 나가듯 비장한 각오로 출근한다. 주말 나들이를 한 어린이환자들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않은 부모들은 주중엔 자신들이 바쁘고 아이들은 또 더 바쁘기 때문에 주말만이라도 아이들을 야외에 데리고 나가 좋은 부모노릇 하려고 애쓴다. 일정을 빠듯하게 잡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고속도로에서는 쉬지않고 목적지까지 달려간다. 기억에 남을 전시관을 돌고 설명도 곁들여 좋은 얘기들을 해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도 몇 개 태워주고….

내게 아이가 없었을 때는 월요일에 환자가 많았는지 별로 기억이 없다. 그러나 아이엄마가 된 뒤로는 되풀이 되는 소아과의 월요일 혼잡상태에 이유가 있다는걸 알게 됐다. 다름아니라 부모자식간에 서로가 바빠 못해줬던 일을 주말에 잔뜩 계획을 세워 한꺼번에 하는 데서 비롯된다. 빡빡한 일정으로 아이들에게 무리가 따르는데다 요즘같은 경우 아침은 쌀쌀하고 점심때는 덥고,또 한참 뛰고 놀다보면 땀이 나고, 거기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찬 음료는 안성마춤인 것이다.

그렇게 '바짝' 뛰놀고 나면 피로가 몰려오고 땀흘린 뒤 저녁무렵엔 찬바람을 맞게되고 피곤한 채 씻지도 않고 늦게 도착해 그대로 쓰러져 자기 일쑤이다. 밤부터 고열이 나고 입안에 물집이 돋아 잘 먹지 못하거나 콜록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중에 밤새 아이가 보채면 덜컥 겁이난 부모들은 월요일 새벽부터 병원으로 달려온다.

나 역시 첫애가 돌이 됐을때 더없이 맑은 세상을 아이의 망막에 남겨주고 싶어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배경이 된, 발이 푹푹 빠지는 눈덮인 지리산엘 갔다. 그 날 이후 아이는 내리 한 달동안 아파 통통하던 볼이 쏙 빠져버렸다. 첫돌 선물치고는 후회막심한 것이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부모에게 주는 기쁨이 더 큰 것 같다. 아이 방을 오밀조밀 꾸미고, 예쁘게 옷입히고,건강하게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감에 젖는 것은 바로 부모 자신들이므로. 야외 나들이가 잦아지는 가을철,아이에게 무리하게 숲 전체를 한꺼번에 다 보게 할 것이 아니라 그 속의 도토리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여유를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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