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수회담 이모저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9일 오전 11시 청와대에서 여섯번째 영수회담을 갖고 각종 국정현안을 논의했다.

오찬으로 이어져 2시간30분 가량 계속된 이날 영수회담은 경제난, 의약분업, 남북문제 등 굵직굵직한 현안뿐 아니라 두 사람이 묵은 감정을 터놓고 얘기하는 등 과거 어느 영수회담보다 밀도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지난 6일 내일신문 창간 회견에서 "나는 이 총재와 라이벌이 아니다. 내가 다시 대선에 나설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 오해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만나서 얘기를 하겠다"고 밝혀 이날 회담에서 이 총재에게 여야관계에 대해 흉중의 말을 모두 할 뜻을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11시 2분께 본관 백악실에 도착한 이 총재에게 "안녕하십시까,반갑습니다"라며 환한 표정으로 맞이했고, 이 총재도 얼굴에 웃음을 띤채 "오랜만입니다"라고 화답했다.

이어 두 사람은 화창한 날씨와, 풍작, 장애자 올림픽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김 대통령이 "태풍과 수해에도 불구하고 농민과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해풍작을 이뤘다"고 말하자, 이 총재는 "지난번 수해지역을 다녀왔는데 군의 힘이 큰것 같더라"고 답했다.

이 총재는 "장애자 올림픽 선수촌에 다녀왔는데 종합 10위를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더라"며 "일반 올림픽과는 달리 장애인 올림픽에 대해 관심이 저조한데 대통령께서 큰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청했고, 김 대통령은 "나도 관심을 갖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이 적어 안타깝다"며 이 총재의 의견에 동감했다.

이후 두 사람은 보도진과 배석자 없이 단독 회담에 들어갔으며 이 총재는 권 대변인이 전해준 서류봉투를 옆에 두고 회담에 임했다.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과 남궁 진(南宮 鎭) 정무수석, 박준영(朴晙瑩) 공보수석 등은 본관 1층에서 주진우(朱鎭旴) 총재비서실장, 권철현(權哲賢) 대변인 등과별도로 회동을 가졌다.

김 대통령과 이 총재는 이날 오찬 직전까지 1시간 동안 남북문제, 경제현안, 정치현안, 한빛은행 특검제, 선거사범 처리, 의약분업 등의 현안과 관련해 깊이 있는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이 총재는 남북문제와 관련해 "현대의 위기는 수익성 없는 대북투자가 원인", "대통령 임기내 하려고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 "대북식량지원을 내막적으로 다 해놓고 공표 직전에 야당에 알리면 무슨 소용이냐"는 등 직설적이고 비판적어조로 질문을 했고,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은 낮은 단계연방제론에 대한 답변도중 "김 위원장을 만났을때 '내가연방제에 합의하면 서울에 내릴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고 소개하면서 북한이 오히려 우리의 '남북연합'에 더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총재는 "경제가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조심해야 한다"며 예금부분보장제도의 유보안을 건의했고, 김 대통령은 "정부에서도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이 총재가 경제.민생법안 통과에 협력하겠다는 뜻에 감사를 표시하는 등 경제난 극복에 공동 노력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한식 코스 요리로 12시10분께부터 50분가량 오찬을 하면서도 두 사람은 정치현안 등과 관련해 여러 얘기를 주고 받았다.

이 총재는 정치 현안과 관련, 김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를 건의했으며,김 대통령은 "참고로 하겠다"만 말했을뿐 더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박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이 총재에게 과거 자신이 야당 총재시절이었던 13대 여소야대국회에서 법안의 97%를 여야 합의로 처리해 주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어지간한문제는 국회에서 결론을 낼 수 있으니 우리가 서로 인내심 갖고 국회가 잘 운영되도록 하자"면서 "나도 그럴테니 이 총재도 그렇게 하자"고 여러차례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담에서는 의약분업과 관련해서도 여러 얘기가 오갔으나 청와대 대변인은"회담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이를 지켜보고 부족한 것은 보건의료발전특위에서 다루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반면 한나라당 대변인은 "의정 협상이 진행중이기 때문에구체적인 발표는 삼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옷소매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인용, "정계에서 이렇게 여야 영수가 돼 책임지고 나라일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보통 연분이아니다"라면서 "앞으로 서로 왕래하고 가족끼리 식사도 하고, 국민앞에서 협력하는정치 분위기를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고, 이 총재도 "그렇게 하자"며 김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찬이 끝난 뒤에도 못다한 얘기를 계속했으며, 김 대통령이 제안한 영수회담의 정례화 등 네가지 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회담 내용을 정리했다.

김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박 대변인을 불러 회담 내용을 구술했다.

회동이 끝난 뒤 이 총재는 승용차편으로 곧바로 국회로 이동, 의원총회를 위해국회 146호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의원들에게 영수회담 내용을 설명했다.

이 총재는 또 청와대에서 국회로 이동하는 동안 동승한 권철현 대변인에게 대화내용을 구술, 언론에 발표토록 했다.

이 총재는 의총 참석에 앞서 국회 본청 현관 앞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이 '회담이잘 됐느냐'며 질문공세를 벌이자, '허허'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총재는 회담 내용에 만족한 듯 밝은 표정이었다. 이어 이 총재는 의총에서 메모를 읽어가며 40여분에 걸쳐 영수회담의 대화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특히 김 대통령이 "국회에서 대화가 안되고 격돌하거나 날치기가 이뤄져불신이 심각해진데 대해 정치인으로서 자성한다"고 말했다며 "이는 국회법 날치기에대한 대통령의 유감표시"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 남북문제, 경제문제, 정치문제, 의약분업 문제 등에 대한 자신의 발언과 김 대통령의 답변을 소개한 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경우도 있어 '직설적'으로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의약분업과 관련, 이 총재는 "김 대통령이 의약분업 문제를 대통령 직속보건의료발전특위에서 다루고 의료계의 진료복귀에 대한 합의발표를 하자고 요구했으나 정부와 의료계간 대화를 지켜보자고 답했다"고 소개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간 대타결이 안됐을 때를 염두에 두고 '어떤견해'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말해 '모종의 안'을 제시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같은 시각 권철현 대변인은 여의도 당사에서 이 총재로부터 구술받은 영수회담내용을 기자들에게 항목별로 소상히 브리핑했다.

권 대변인은 특히 "이 총재가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을 만났고 모든 문제를 피하지 않고 얘기했다"며 "이 총재는 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에서부터 대국민사과에 이르기까지 할 말을 다 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또 "김 대통령도 이 총재의 말을 진솔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 이번 만은 잘되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면서 "여러번 영수회담을 따라가 봤지만 오늘 김 대통령이 의외로 부드러워진 것 같았으며 한광옥 비서실장과 남궁진 정무수석도 '대통령의 표정이 늘 딱딱했는데 부드러워서 좋다'고 말하더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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