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월산-물고기

다시 찾은 일월산. 산천이 누렇게 바뀌고 있다. 가을이 익어 간다. 고랭지에 갈아 둔 김장배추와 무밭만 푸른 빛이 남아 있을 뿐 벌써 돌단풍은 절벽마다 붉은 수를 놓고 있다. 일월면 곡강리 척금대와 상원리를 지난 반변천. 물길을 바로 잡아 영양읍 대천리 어구에서 울티 고개를 휘감고 돌아 동천과 합수된다.

영양읍내에 들어서면서 반변천은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다. 주민들의 생활 오폐수를 그대로 쏟아 낸다. 희뿌연 오폐수가 유입되면서 강바닥 모래가 시커멓게 썩어 간다. 영양읍 삼지리. 초입에서부터 오수 악취로 숨이 콱 막힌다. 오염상태를 확인 하기 위해 고무보트를 띄웠다. 함께 따라나선 안동정보대학 환경시스템공학과 학생들이 코를 쥔다. 물위로 역한 냄새가 풍긴다. 강바닥에 낯선 파이프 2개가 설치돼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폐수를 내보내는 비밀 배출구인가. 바로 전 일월면 곡강리 척금대까지 청정 유리알 같던 물. 읍내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이 모양이 되다니 기가 막힌다.

일행과 함께 학생들은 강물을 따라 삼지리에서 200여m 정도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강변에 영양군 분뇨처리장이 나타났다. 요란스럽게 폭기조가 가동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종 방류구 주변이 온통 구린내다. 게다가 인근에는 폐쇄된 쓰레기매립장에서 새어 나오는 시커먼 침출수까지 흘러든다. 분뇨처리장의 악취와 뒤섞여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물속에 거머리가 보인다. 더럽고 습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벌레 유충들이 어지러이 살고 있다. 뿌옇게 썩은 부유물과 지저분한 이끼들이 물위에 둥둥 떠다닌다. 환경탐사에 나선 학생들도 기겁을 한다. 손가락조차 물에 담그기를 싫어 하는 기색이다.

한차례 몸살을 겪은 반변천. 곧이어 1만여명의 영양읍민들이 쏟아내는 생활오수를 또다시 만난다. 영양읍 현리에서 합류되는 황룡천은 더 이상 하천이 아니다. 시궁창이다. 황룡은 옛날에 도망갔을 법한 이 하천을 통해 반변천으로 하루 수천여t씩의 생활오수가 그대로 흘러 든다. 하얗게 질려 버린 반변천. 보기에도 안쓰럽다. 물고기가 살고 있을까. 여러 차례의 투망질에 10여마리의 붕어를 잡았다. 자세히 보니 절반 정도가 옆구리와 배, 등지느러미쪽에 비늘이 벗겨지고 살이 헤진 헌댕이가 있다. 오염된 물속에서 붕어는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영양군은 지난 98년 정부로부터 반변천 수질보전에 필수적인 하수종말처리장 마련을 위해 8천여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았으나 반납했다. 이유는 지방재정이 어려워 하수종말처리장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 운영비 부담에 손을 놓아 버린 지자체와 예산운영 규정만 고집하는 중앙 정부. 이 바람에 반변천 수질은 악화 일로에 놓여 있다. 수질분석을 위해 샘플을 채취하던 안동정보대학 신덕구(46·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눈으로만 봐도 오염물질 유입이 아주 심각한 상태"라며 죽어가고 있는 반변천을 크게 우려했다.

송연당을 지나 감천의 천연기념물 114호 측백나무 군락지를 돌아 한참을 지나서야 반변천 주변에 기암절벽이 나타나면서 썩은 물에 막혔던 숨통이 다시 틔었다. 왠지 악취도 덜해졌다. 하천의 자정능력 때문일까. 골짝마다 흘러드는 맑은 개울물이 더해진 까닭일까. 반변천은 입암과 남이포에서 일월산을 발원지로 하는 또다른 하천 청계천과 합류되면서 오염으로 가빠진 숨소리를 겨우 가다듬는다. 다시 물빛이 담청색으로 돌아왔다. 환경탐사를 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피어 오른다. 절벽과 강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촛대를 깎아 세운 듯한 바위가 마주보고 있는 선바위와 반변천과 청계천이 만나 널찍한 소택지를 이룬 남이포. 이렇듯 반변천은 사람들을 위해 일월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자연을 보기좋게 다듬고 있었다.

영양군은 이곳에다 호텔을 짓고 민속박물관, 보트장, 수변휴게공간을 설치할 계획. 소위 관광개발을 한다는 얘기다. 강 상류에서 오염물을 그냥 쏟아내면서 관광개발이라니…. 반변천을 오염시키는 또하나의 오염원을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남이포와 선바위를 뒤로 하고 보트는 반변천을 타고 입암면 산해리로 흘러 갔다. 여울을 만나자 학생들이 보트에서 내려선다. 발을 담그기 조차 꺼리던 학생들. 이제 제법 맑아진 강물에 호감을 보였다. 강변 참나무 숲에서 낯선 사람들을 발견한 어치들이 시끄럽게 떠든다. 봉감마을 입구에 세워진 국보 187호 봉감모전 5층 석탑이 눈에 띈다. 얼마전까지 쏘가리가 많기로 소문난 봉감소(沼). 물고기 서식 정도를 대충이나마 알아보기 위해 밤새 이곳에서 그물을 치고 기다린 민물어부 김대일(42·안동시 임하면)씨를 만났다. 일행을 보자마자 투덜댄다. 일당을 물어내라는 투다.

김씨가 잡은 물고기는 납줄개 46마리, 붕어 24마리, 꺽지 22마리, 모래무지 16마리, 동사리 7마리, 참마자 3마리로 2급 수종도 있었으나 3급수에 많이 사는 붕어와 납줄개가 단연 우점종으로 나타났다. 외래어종인 향어와 끄리도 한두마리씩 잡혔다. 다행이다. 1급수에서 2, 3급수로 수질은 뚝 떨어졌지만 반변천에 아직 물고기가 다양하게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가로 내려갔다. 방동사니와 물여뀌 풀숲에서 벼메뚜기가 후두둑 날아 오른다. 강바닥에는 검정말, 붕어말 각종 물풀 사이로 모래무지 치어가 새까맣게 붙어 있다. 다슬기도 많다. 신기하다. 서너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봉감소 바닥을 샅샅이 훑어 본 스쿠버 다이버 우성국(26·안동해병전우회원)씨와 김후남(27·여·회사원)씨가 물밖으로 나온다. "쓰레기가 없어요. 물밑은 깨끗해요" 처음 형편 없을 것으로 짐작했던 강바닥. 깨끗하다니 천만 다행이다. 한시간 가량 물밑을 더 뒤진 잠수부들은 구겨진 조립식 건축자재 한장을 건져냈을 뿐이다. 사람들이 조금만 거들면 반변천 전체에 산천어가 헤엄치는 옥수가 흐르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변천 강변마을 주민들이면 '석바우'라는 20여년전 강어부를 기억한다. 항상 싸리로 만든 다래끼를 어깨에 걸치고 지게에 쪽배를 짊어진 그는 5일장을 따라가며 주변 반변천에서 잡은 물고기를 장에 내다 팔았다. 산모가 있는 집마다 그에게 잉어, 가물치를 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쏘가리, 누치, 메기, 붕어, 모래무지…. 명주실로 뜬 그물로 고기를 잡았던 석바우. 물고기를 팔 만큼만 잡았다. 다음 장날도 생각할 줄 아는 그때 강어부들은 요즘처럼 물고기를 한꺼번에 몽땅 잡으려 드는 남획을 하지 않았다.

방전리를 지난 반변천은 동쪽에서 흘러드는 화매천을 만나 강 한가운데 큰바위가 인상적인 흥구소를 거쳐 청송군 진보면으로 향한다. 흥구소에 이르러서 쏘가리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강어부 김씨는 여름 장마때 임하호에서 거슬러 올라온 쏘가리라고 했다. 물고기의 황제 쏘가리. 아직도 씨가 마르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멀리 임하호에서 청송 용천천과 합류하는 반변천은 안동 임하호에서 장장 100여km의 여정을 푼다. 일월산의 젖줄 반변천은 민초들의 삶인 양 인간들이 저지른 오염에도 아무런 말도 없이 천천히, 그렇지만 끊임없이 하류로 흘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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