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크린 리뷰-러브 오브 시베리아

'시베리아'하면 춥고 거친 땅이 연상된다.눈 속에 핀 꽃이 고귀하듯, 얼음장을 뚫고 펼치는 사랑도 더 애틋해 보인다. 생이별한 남편을 찾아 헤매는 '해바라기'의 소피아 로렌, 시혼(詩魂)을 뿜어내며 죽어간 '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 그들의 흔적이 묻어나는 땅이기도 하다.

'러브 오브 시베리아'는 오랜만에 보는 대작 러브서사시다. '제2의 닥터 지바고'라는 얄팍한 상혼이 터무니없어 보이긴 하지만 서사적인 분위기와 감수성, 위엄 넘치는 러시아의 힘 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제인 칼라한(줄리아 오몬드)은 러시아의 미국인 사업가에 고용돼 황제의 오른팔인 레들로프 장군을 유혹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다. 기차여행 도중 우연히 유쾌한 사관생도 안드레이 톨스토이(올렉 멘시코프)를 만난다. 톨스토이는 연상의 이혼녀인 제인에게 첫눈에 매혹된다.

모스크바에서 재회한 둘은 곧 사랑에 빠지지만, 레들로프에 대한 제인의 관심 때문에 톨스토이는 질투에 눈이 멀어 레들로프 장군을 공격한다. 톨스토이는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고 제인은 그의 아들을 키우며 그를 그리워한다. 영화는 제인이 20년 뒤 군대에 간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전개된다.

'러브 오브 시베리아'는 운명적으로 만나 운명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엇갈린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견고해 보이던 운명적 사랑도 문틈으로 본 사소한 오해에서 갈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서사 로맨스답게 러시아의 이국적인 풍광과 5천명이 넘는 엑스트라, 크레믈린궁에서 촬영된 사관생도의 졸업식 등이 스펙터클하다. 곳곳에 장치한 유머러스한 에피소드, 다양한 캐릭터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원제는 '시베리아의 이발사'다. 시베리아의 벌목기계의 이름이자 모차르트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패러디한 말이다. 그러나 수입사는 제목이 은유 하는 맛을 저버린 채 '러브'에 목을 매고 말았다. 늘 있는 일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더욱 경악스럽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