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에 이 나라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전국을 통틀어도 변변한 일자리는 별로 없었고 기껏해야 울산의 정유공장, 한국전력, 비료공장 등 몇몇개 기업과 한국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 등이 손꼽히는 일자리였다. 그러다 70년대부터 등장한 삼성, 대우, 현대 등 재벌기업의 출현이야말로 이 나라 젊은이들에는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존재였다. 그때 전 국민들은 "삼성에 다닌다"면 한번 더 눈길을 보냈었고 '현다이 미주(美洲)대륙 강타'소식에 얼마나 긍지를 느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젊은 대학생들은 재벌의 축재 과정이 공정치 못함을 지적하고 매판자본 앞잡이라 매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재벌기업이야말로 졸업하기 무섭게 입사원서를 내고 기꺼이 몸바쳐 일하고 싶어했던 '일 터'이기도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 나라의 중산층에겐 미우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곳-애증(愛憎)이 교차되면서도 미움보다는 사랑이 더 느껴지는 곳이 '현대'요 삼성, 대우가 아닌가 싶다. 현대가 휘청댄다한다. 그처럼 억척스럽던 '왕회장'이 애지중지 하며 제2고향이라던 서산농장마저 내놓았다한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열배가 넘는 3천123만평을 평당 2만원쯤으로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어려운 회사 사정에 농장이라도 매각해서 자구책을 세우겠다는대야 누가 뭐라겠는가마는 그래도 생각해보면 여운은 남는다. 불과 1년전만해도 1천마리의 소떼를 몰고 삼팔선을 넘었던 강원도 통천 산골마을 출신의 그 고집 센 왕회장이 이 무슨 초라한 모습인가. '현대'성장의 신화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지금 이 땅의 중산층에겐 현대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심경은 참으로 착잡하다. 그것은 단순한 회사의 경제적 파산을 지켜보는 이상의 것-가난한 농군의 아들이 이룬 그 꿈이 부서지는 것을 보는 허망함이 아닌지. 어쩌면 한강의 기적도 이제 끝장난 것인가 하는 우려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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