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삼성 헌법'어디에

지난 38년 대구 서문시장에서 문을 연 건어물상 주식회사 '삼성상회'가 현재 국내기업중 가장 잘 나간다는 삼성의 효시였다.

당시 업주 고이병철씨는 삼성이라는 상호에 '크고''강력하고''영원하라'는 3가지 창업정신을 담았다고 한다.

이 창업정신이 시대조류에 따라 때때로 바뀌면서 지금은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라는 삼성(三成)마인드로 정착돼 있다. 그리고 최근에 삼성그룹이 제작 배포한 '삼성 신경영'이라는 교양책자에는 특별히 직원들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자 2장 '삼성헌법'항목에는 "우리 민족은 인간미와 도덕성을 중시해왔다. 남에게 고통을 주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내잇속만 챙기지는 않았는가"라는 성서의 한 귀절같은 경구가 들어 있다.

이는 그동안 삼성이 끈질기게 추구해 온 기업의 도덕·윤리 등 무형적 자산을 결코 경시하지 않는다는 기업이념과도 부합하는 대목이다.

◈대구에 이는 反 삼성 움직임

이런 삼성이 최근 대구 삼성상용차 퇴출을 두고 도덕성시비에 휘말려 아주 곤혹스런 모습이다. "돈은 지역연고를 내세워 벌고 퇴출은 경제논리로 푼다"는 지역민들의 비난에 대답이 궁색한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가 전시민 연대 움직임으로 번지자 자칫 낙동강까지 밀려가는 것 아닌가해서 몹시 당황하는 것 같다.

지난 6일 시청에서 열린 대(對)삼성 규탄 간담회장 분위기는 예상대로 여간 냉랭하지 않았다. 지역 경제·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범시민대책위 구성에다 삼성상품불매운동 등 극한 대응까지 심도있게 거론된 모양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구시내 곳곳에서 반(反)삼성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삼성상용차 퇴출 이후 그룹 각 계열사 직원들 가운데 아예 배지를 떼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삼성이미지 실추에 따른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의식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삼성 일부 영업점들은 이번주 들어 매출이나 수신고가 줄어들어 고민스럽다고 한다.

◈상용차 퇴출에 배신감

삼성전자의 한 중견간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그룹측의 해결책이 모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장기화 할 경우 매출 및 이미지 회복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렇게 사람 모인 곳마다 시끄러운데도 정작 삼성그룹측과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구시는 통 말이 없다.

삼성그룹은 경제논리를 내세워 이번 퇴출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변하고 싶지만 대구시와 시민들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 '행여 입이 화근이 될까' 말문을 열지 못하는듯 하다.

사실 90년대 들어 삼성이 대구에서 챙긴 특혜를 보면 지역연고나 정치논리로 풀 수 있을진 몰라도 경제논리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허다하다.

◈고용승계 등 차선책이라도 내놔야

대구시는 왜 말이 없는가.

이번 사태가 불거진 후 대구시는 고위간부 2명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측에 책임자 면담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줄 것 다주고 뺨 맞은 격이 되고 말았으니 입이 광주리 구멍만큼 많아도 뭐 할 말이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대구시와 삼성그룹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삼성은 상용차를 억지로 살리려다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취한 선택이었다면 삼성은 자신들이 누린 특혜에 상응하는 차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진입한다는 기업측의 구호에 걸맞은 지역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대구시나 대구상의는 일만 터지면 건의서나 남발할 것이 아니라 지역연고 기업에게 준 특혜를 지역민들에게 환원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대민봉사·신뢰회복의 길이다.

지금 지역민심은 대구시의 무기력이나 기업의 횡포를 좌시할 만큼 결코 넉넉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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