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퍼즐처럼 얽힌 꿈과 현실

한 남자가 경찰서로 잡혀온다. 신분은 국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정신과 의사인 처남을 살해한 혐의다. 남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자신의 결백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형사에게 들려준다. 고교 제자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지 10년이 된 그는 아내의 임신소식으로 어느 때보다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하룻밤새 계속되는 남자의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고 사실과 거짓, 실체와 환영, 꿈속과 현실이 마구 뒤엉킨다.

하일지씨의 신작 장편소설 '진술'(문학과 지성사 펴냄)은 일인칭 시점의 독백체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제까지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미학을 보여온 작가의 소설쓰기가 '진술'에서는 독백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전개된다. 환상과 실제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이 소설은 사건의 진실을 향한 행보가 주인공의 진술에 따라 나선을 그리며 펼쳐진다.

남자가 살인혐의로 체포된 곳은 10년전 신혼여행때 아내와 첫날밤을 보낸 바닷가 그 도시 그 호텔이다. 자신이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고 강변하는 남자는 형사의 심문에 대해 독백체의 긴 진술을 이어간다. 지금 아내가 호텔에서 잠들어 있다고 남자는 말하지만 아내는 이미 8년전 외국 유학시절 사망한 사실이 진술에서 밝혀지면서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가 드러난다. 그런데도 남자는 그녀가 죽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살해당한 처남의 진료기록에는 '정신분열적 성격' '병적 애도 반응에서 오는 망상'이라는 남자의 병력이 남아 있다.

고뇌에 찬 한 인간의 독백을 한줄 한줄 떠올려 옮긴 이 작품은 하씨의 다른 작품에 비해 훨씬 긴 2년이 걸려 완성된 소설이다. 독특한 문학적 질감이 느껴지는 이 소설은 독자들을 환상과 실제의 파동속으로 끌어들여 갖가지 의문부호들을 남기며 마치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8년동안 아내의 환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남자의 혼란스런 모놀로그. 이런 이야기틀을 통해 작가는 환상의 무형성과 실제의 육체성을 보여줌으로써 소설의 새로운 '거리두기'를 꾀하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