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편의 코미디-민주주의 모델 두 기류

미국 대선 개표가 야릇한 상황으로 변질된 뒤, 세계 금융.상품 시장이 동요하고,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도 완벽한 국가 못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끝내 '개표 결과 발표 유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이번 미국 대선에 대해 국제사회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도 완벽하지 않다는 냉소적 견해도 속속 나왔다.

아프리카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의 한 인터넷 가게 종업원은 "이번 선거를 보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미국도 완벽한 국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짐바브웨 관영 언론들은 "이번 미국 대선의 치부가 그간 부정선거 의혹을 받아온 아프리카 및 제3세계 국가들의 오명을 씻게 해줬다"며, "아프리카 보다 못한 선거"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라크 신문들은 "투표가 끝났는데도 유권자들은 누가 당선했는지를 기다려야 하는 한편의 코미디로 미국 대선이 전락했다"며, "이제 유대인들이 새로운 당선자를 결정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야유했다.

한 신문은 미국 대선을 "한편의 극장용 코미디"라고 혹평한 뒤, "유대인들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 결과 혼란은 유대인들의 협조가 없는 한 장래에 수많은 난관이 있을 것임을 부시에게 일깨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판 신문 미러는 "지금 미국은 조롱 대상이 됐다"면서, "이것이야말로 '바나나 공화국'에서 유럽인들이 기대할 수 있는 바로 그런 것"이라고 조롱했다. 또 타임스 신문은 "이번 선거야말로 민주주의의 웃음거리"라면서, 예측 불가능한 미국 선거제도 아래서는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어가 부시를 이기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살아있는 민주주의 구현

○…그러나 한쪽에서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보여 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포스트 신문은 "이번 대선은 미국적인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그대로 보여 줬다"면서, 플로리다주에서 재검표가 실시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모델이 될만하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여기서 나타난 정치적 성숙과 원칙을 지키는 태도 등은 이제 막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도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에서 한 표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쿡 영국 외무장관 역시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우리가 가장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로부터 보기를 원하는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을 "히치콕도 이 보다 더 재미있게 쓸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평했으나, 세계적인 혼란을 야기한 언론의 성급한 보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오스트레일리언지는 "이제부터 정치평론가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미 언론의 성급한 보도 태도를 꼬집었다.

전날 미 언론의 부시 당선 보도를 믿고 호외를 배포했다 수거하느라 애먹은 일본의 요미우리(讀賣) 신문도 "이번 일로 CNN.NBC.ABC 방송도 항상 정확하지는 않음이 입증됐다"고 비꼬았다.

국제금융 시장 혼조세 거듭

○…미국 선거 불안 이후 국제 금융.상품 시장에서는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혼조세를 거듭하는 등 짙은 관망세가 지배했다.

뉴욕 주가는 9일 하락세를 보였으며, 특히 플로리다에서 무효화된 투표지 문제가 공식 거론되는 등 정치쟁점화 조짐이 일자 투자분위기가 크게 위축됐다.

다우존스 및 나스닥 지수는 오후장 들어 어느 정도 회복되긴 했으나, 장중 한때 각각 2.6% 및 4.5%까지 폭락하기도 했다. 다우존스 지수는 0.67%, 나스닥은 0.97% 떨어진 선에서 장을 마감했다.

유럽 금융시장에서 유로화는 부시 당선 보도 직후 0.05달러 가량 하락했다가 플로리다 재검표로 고어 당선 가능성도 제기되자 하락세를 멈췄으며, 9일의 런던 외환시장에서는 거래량이 급감해 개점휴업 상태가 계속됐다. 국제 석유시장도 투자자들이 투자를 유보함으로써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졌다.

아시아 주식시장은 부시 당선 및 중국과의 관계 악화 우려로 큰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홍콩 항생지수는 부시 당선 보도가 나온 직후 순식간에 365p폭락하더니 9일에도 0.96% 빠졌다.

국제 금융계의 큰 손들을 많이 유치하고 있는 스위스의 폰토벨 은행은 혼란이 일자, 미국 증시의 '부시 주'와 '고어 주'에 각각 투자하는 '부시옵션'과 '고어옵션'을 새 초단기 투자상품으로 개발, 대대적인 광고에 나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빠르면 오늘 중 당선 선언

○…플로리다주 재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시 공화당 후보가 빠르면 한국시간 10일 중에 제43대 대통령 당선을 선언하고 차기 내각 진용 중 일부를 발표할 것이라고 텍사스 주도 오스틴의 유력지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부시 선거본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 정권인수 팀장에 체니(59) 부통령 후보, 차기 국무장관에 걸프전 영웅 콜린 파월(63) 전 합참의장, 백악관 비서실장에 앤디 카드(53) 전 교통부 장관을 내정했다고 전했다.

이런 조치는 부시의 당선 낙관에도 불구하고 고어 민주당 후보 진영과 지지자들이 플로리다주 재개표에 이어 일부 카운티(군)의 재투표까지 거론하는 등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소식통은 부시 참모들이 부시의 당선을 인정하는 쪽으로 여론이 유리한 국면에 있을 때 신속하게 대통령 당선 선언과 내각 발표를 해 백악관 입성 주도권을 선점하는 게 향후 사태전개 과정에서 유리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부시 당선을 예상하고 오스틴 시내 주 의사당 앞 도로에 지난 7일 설치됐던 축제장, 프레스센터, 카메라 플랫폼 등은 해체돼, 부시 당선이 확정되더라도 대규모 축하 행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행사준비 관계자는 "부시가 재개표에서 이겨도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대규모 축하행사를 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종합=국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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