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대선 2000-끝나지 않은 대선

미국 대선이 플로리다 주에 목을 매게 된 뒤 세계의 관심은 "과연 미국이 이번 정치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까" 하는데로 집중됐다. 미국에서는 비슷한 일이 이미 발생한 적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 기회에 대통령 선거 방식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지시간 지난 8일 이후 가족들과 함께 테네시주 내슈빌의 호텔에서 머무르면서 개표 상황을 지켜 봤던 고어는 9일 저녁 워싱턴으로 귀환했다.

이에 앞서 그는 호텔 방에 설치된 러닝머신과 16개월 된 손자의 재롱, 두달만에 처음으로 취한 12시간의 숙면으로 하루 동안의 초조함과 답답함을 이길 수 있었다고 그의 한 고위 보좌관이 전했다.

이런 한편 테네시주 내슈빌에 차려졌던 민주당 선거운동 본부도 플로리다주 재개표 및 재투표에 대비한 법적 준비로 주 업무를 전환하면서 운동본부 자체는 해체 단계에 들어갔다.

반면 부시는 개표 결과 분쟁 처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채, 자신은 자문역들과 차기 행정부 각료 후보들을 만나 정권인수팀 구성에 대해 논의하는 등 당선자 행보를 계속했다. 그는 특히 정권 인수팀 지휘탑인 체니 부통령 후보, 비서실장으로 유력시되는 앤드루 카드 등을 8일 하루 동안 주지사 관저에서 만났으며, 대중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후보들을 대신해 플로리다 현지에서 '전투' 사령탑을 맡은 사람은 전직 두 국무장관이었다.

서로 친구 사이이면서도 제임스 베이커(70) 전 장관은 공화당 부시를 대신해, 워런 크리스토퍼 전 장관은 민주당 고어 후보를 대신해 활동하고 있다. 베이커는 부시 전 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냈고, 그를 이어받아 크리스토퍼는 클린턴의 첫 4년 동안 국무장관을 역임했었다.

이들의 활동 자격은 각각 공화당 및 민주당 참관인 단장. 둘 다 거물 변호사 출신이다. 선거가 공중에 걸린 상황이 계속되는 한 후보 본인들은 나서기가 쉽잖은 만큼, 이들이 대리인으로서 여론의 집중 관심 대상이 될 전망이다.

두 사람은 플로리다에 도착 하자마자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크리스토퍼는 "플로리다에서 심각하고도 실질적인 비정상적 행위들이 있었음을 확신하게 됐다"면서, 약 178만표가 걸린 4개 카운티의 투표지에 대해 수작업을 통한 재개표를 공식 요구했다. 베이커도 뒤질세라 "문제가 된 팜비치 카운티 투표지는 선거에 앞서 양측이 검토한 것인 만큼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반격했다.

휴스턴의 백만장자인 베이커는 "공화당에서 기적을 만드는 인물"로 칭송받아 왔다. 부시 대통령과는 35년 동안 친구로 지내왔고, 함께 사냥과 낚시를 즐겼으며, 대통령과 국무장관으로서 공산주의 몰락 및 냉전의 종식, 걸프전을 함께 겪었다.

크리스토퍼는 국무장관으로서 북한 핵 동결, 중동 평화협상, 보스니아 인종분쟁 종식 등에서 외교 성과를 남겼다.

○…새 대통령이 개표 마감 직후에 확정되지 못한 사례는 120여년 전(1876년)에도 있었으며, 상황이 올해와 유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공화당 헤이스 후보는 투표 당일 민주당 틸든 후보에게 패한 것으로 알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날 시작된 선거부정 시비, 소송 위협, 재개표 등 혼란은 4개월간 지속됐다. 틸든은 전체 투표에서 25만표 차이로 앞섰지만 공화당은 이런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공화당은 표 차가 근소했던 루이지애나, 사우스 캐롤라이나, 플로리다 등을 문제 삼았고, 그 전략대로 선거부정 시비가 일었다. 이에따라 선거인단의 대통령 선출 날짜가 연기되고, 새 대통령 취임일까지도 결판이 나지 않았다. 이때문에 기존 그랜트가 대통령직을 몇주일간 더 수행해야 했다.

결국 새 행정부 출범시한인 3월4일을 이틀 앞두고 의회는 양당 의원으로 선거관리위를 구성하고, 당내 주요 인사들이 막후접촉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러나 이 선관위는 공화당 헤이스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렸으며, 최종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헤이스가 185표 대 184표로 승리했다. 처음과는 당선자가 바뀌었던 것.

그러나 그때 대선에서는 지금 같은 대규모 재개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법정싸움도 벌어지지 않았다. 남북전쟁 상처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틸든도 결과를 순순히 수용했다.

○…1960년의 케네디(민주당) 대 닉슨(공화당) 대선도 올해와 닮은 점이 있다. 전국 지지율이 0.2%p(11만2천여표) 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두 후보의 사전 여론조사에서도 47%의 동률을 기록했으며, 투표 다음날 아침 6시가 돼서야 선거인단 확보상(303명 대 219명) 우열이 확인됐다. 닉슨은 정오가 돼서야 패배를 시인했으나, 그 뒤에도 늘 "승리를 강탈 당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특히 하와이 주 첫 개표 결과에서는 닉슨이 141표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재개표 결과 오히려 115표 더 적은 것으로 번복됐다.

2차 재개표도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닉슨은 포기했다. 그러려면 6개월이나 걸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치사한 패배자'로 역사에 낙인찍힐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전세계의 이목이 이제 미국 동남쪽 플로리다주 부재자 투표로 쏠리고 있지만, 정작 서북쪽 끝인 워싱턴 주에서는 상원의 판도가 걸린 또다른 부재자 투표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수십만 표에 이르는 이 투표 때문에 10일까지는 상원의원 선거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

34석의 이번 상원 선거 중 33석은 이미 승패가 결정됐다. 하지만 3선의 중량급인 슬레이드 고튼 의원(공화당)과 마리아 캔트웰 전 하원의원(민주당)이 맞붙은 워싱턴주 단 한곳만 아직 당선자를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곳 상원 선거 결과는 매우 의미가 크다. 현재까지 공화당이 50석, 민주당이 49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민주당이 이기면 사상 처음으로 두 정당이 50석씩 나눠 갖는 상황이 빚어진다.

지금까지의 득표 차는 3천170여표. 공화당 후보가 앞서 있다. 하지만 아직도 65만여표가 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또 개표가 완료돼도 표차가 0.5% 이내이면 자동적으로 재검표를 하게 돼 있다.

외신종합=국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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