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캄캄해져 버린다면? 버스의 커다란 번호판이 보이지 않게 돼 버린다면 어떨까? 허공인 줄 알았던 곳에 날카로운 장애물이 있었음을 피부가 먼저 알아 차렸을 때, 그 무력감은?
장삼식(37)씨는 10년 전 눈이 침침해지는 것을 느꼈다. 염증이 생겨 며칠 동안 안과에 다녔고 약을 먹었다.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드디어 1994년, 그는 알록달록한 세상을 영원히 잃었다.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박사과정(경북대대학원·경제학)을 수료한 직후였다. 한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대구사회연구소 창립에 참가해 왕성한 활동을 해오던 무렵이었다. 첫 아기가 한창 옹알이를 시작하고,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던 계절이었다.
빛이 없어지면서 희망찬 미래도 함께 사라졌다. 유일한 재능이었던 공부를 중단했다. 연구소에 나가는 일도 그만뒀다. 직장생활 경험이 없던 아내가 가족의 생계를 대신 짊어졌다. 아내의 직장을 좇아 가족이 대구를 떠나 포항으로 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 포항. 그에게 세상은 더욱 검어져 버렸다. 낮에는 공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밤에는 좁은 방에 틀어 박혀 아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었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보온밥통을 더듬어 끼니를 챙겨 먹고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그렇게 3년.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흰 지팡이 하나 들고 그 먼길을 더듬어 가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점자를 익힌다는 것, 자신이 맹인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삶은 계속돼야 했다.
점자를 익혀 소설을 읽었다. 녹음된 테이프도 부지런히 들었다. 포항까지 찾아온 대구의 자원봉사자가 보내 준 세심한 배려가 큰 용기를 줬다. 서울·부산·대구·포항의 점자 도서관을 샅샅이 뒤졌다. 그곳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본적인 책마저 부족했지만, 그는 걸음을 계속했다.
다시 시를 쓰고 싶어졌다. 대학시절 그는 꽤 많은 습작을 한 문학청년이었다. 필기 대신 녹음을 택했다. 떠오른 단상을 녹음하고 지우기 수백번. 시 한편을 완성하면 아내에게 받아 써달라고 했다. 그렇게해서 1996년과 올해,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첫 시집 제목은 '일등아 잘 있거라 칠등은'. 분위기가 우울하다. 이야기는 서울 아들집을 찾은 늙은 촌로의 것. 그 며느리에게 1등은 아들, 2등은 남편, 3등은 강아지… 시아버지는 7등이다. 그 외에도 그의 시집에선 터무니 없는 순위가 잔뜩 매겨졌다.
불행 중에도 그는 복이 많은 사람 같아 보였다. 학창시절 서클 선후배 30여명이 그의 눈이 되겠노라 나섰다. 그들이라고 세상사는 일이 만만키만 할까? 벤처 사업을 하는 최재곤씨는 2년째 한푼도 집에 돈을 벌어다 준 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선뜻 나섰다. 전업 주부인 이인순씨, 한 복지관의 정재호 관장도 큰 힘이 됐다.선후배 도움으로 장씨는 최근 복지관 한 귀퉁이에 공부방을 얻었다. 공부에 필요한 컴퓨터를 만지고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짬짬이 자신을 도와 줄 자원 봉사자도 만나게 됐다.
지금 그곳에 들어 앉은 그의 컴퓨터엔 얄궂게도 모니터가 없다. 본체 두 개를 연결해 용량만 잔뜩 늘려 놨을 뿐. 인쇄 장치도 없다. 시력이 없으니 필요가 없다. 대신 딴 게 있다. 컴퓨터는 요란한 소리를 쉬지 않고 쏟아낸다.
시를 쓰는 그의 필명은 이수화, '물꽃'이다. 바위에 부딪혀 꽃잎 처럼 부서지는 작은 물방울? 그러나 물방울은 바위를 뚫는다. 지금 그는 노동경제학에 장애인 노동의 특수성을 결합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자신의 작은 노력이 커다란 바위를 쪼갤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내가 성할 때 다리 불편한 친구가 하나 있었지요. 같이 걸을 때 속도 맞추느라 조금 천천히 걸어주고, 계단 오를 때 어깨 한번 빌려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의 다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아닙디다. 장애인들에게는 책도 없고 시설도 없고, 아무런 기회도 없음을 이제사 알았습니다". 장애인 노동문제 연구에 매달리는 이유라고 했다.
그의 공부는 장애인 지원 요구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길을 장애인도 쉽게 걸을 수 있는 모양으로 바꾸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장애인에게 적합한 일터를 만들어 내자는 것이었다. 사지 멀쩡한 사람 본위로 짜여진 사회… 누군가의 배려가 없다면 장애인은 일어서기 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늦은 밤, 커다란 복지관의 작은 사무실엔 장씨 혼자 남아 있었다. 얘기하면서 그는 마주 한 취재기자 쪽으로 자주 고개를 돌렸다. 쓸모 없는 일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불거지는 옛 버릇이라고 했다. 담 너머 섬유공장의 요란한 기계음만이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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