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차 이산상봉 스케치-평양

○…남측 방문단이 그리운 고향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난 뒤 맞은 1일 평양의 아침은 안개가 짙게 끼어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북측 관계자는 "그 동안 날씨가 좋았는데 어제부터 안개가 짙게 끼더니 오늘도 날씨가 좋지 않다"며 "지난 86년 대동강 하구에 남포갑문이 건설된 뒤 대동강 물이 충만해져(풍부해져) 습기가 많아지고 겨울 날씨로는 포근해 기온차가 발생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오전 상봉을 기다리던 남측 방문단은 창 밖으로 평양 시내를 둘러보았으나 짙게 낀 안개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알아볼 수 없어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1일 오후 평양시내에 짙게 깔린 안개를 뚫고 남측 방문단이 찾은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는 교직원들과 70여개 예능, 과학, 체육 소조에서 뽑은 학생 100여명이 나와 남측 손님들을 뜨겁게 맞이했다.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소년, 소녀 소조원들은 박수를 치면서 "환영합니다"라고 연호했으며 남측 방문단원들은 환영나온 학생들을 껴안거나 손을 흔들어 주었다.

또 소조 대표들로 보이는 일부 학생들은 거동하기가 불편한 남측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휠체어를 밀고 학생소년궁전 곳곳을 안내하면서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도했다.

방문단은 예술단 공연이 있기 전 1층과 지하의 소조실을 직접 방문해 학생들의 붓글씨 솜씨와 손풍금(아코디언) 연주를 감상했으며 서예소조실에서는 학생들이 즉석에서 붓글씨로 '조선은 하나', '백두산' 등을 직접 써서 몇몇 할머니들에게 선물했다.

○…1일 오후 6시30분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참관을 마친 방문단은 곧바로 만수대예술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조선적십자회가 주최하는 환송 만찬에 참석했다.

허해룡 조선적십자회 부위원장은 만찬사를 통해 "이 자리에 참석한 남녘의 여러분들이 북과 남 사이에 쌓인 오해와 불신을 풀고 민족의 단합을 이룩해 흩어진 가족,친척들이 함께 모여살게 될 조국통일을 위해 힘껏 노력할 것을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방문자들은 식사를 하면서 안내원 등 일행들과 방문기간에 있었던 얘기로 담소를 나눴고 일부는 내일이면 정든 가족들과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이길자(76·여·부산 수영구 광안동)씨는 "가족들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자식들 잘 키우는지' 등 간단한 말밖에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꼭 해주고 싶은 말을 밤새 생각해서 내일 아침 마지막 상봉 때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저녁이 되자 다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가 끼어 버스가 서행 운전하면서 만찬장으로 이동하는 데 다소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

○…남북 이산가족들이 함께 모인 평양 고려호텔 2, 3층의 1일 공동 오찬시간은 노래자랑과 시 낭송 등이 어우러져 시종 흥겨운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북측 가족 상당수는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을 '김정일 장군님' 덕으로 돌리는 찬사와 함께 관련된 노래를 불렀으나 남측 가족들은 차분히 이를 지켜만봐 별다른 불상사는 없었다.

이날 노래자랑은 김진옥(81·여)씨의 북측 가족들이 나와 '고향의 봄'을 부르며 시작됐고 전 참석자들이 박수치며 노래를 따라 불러 열기가 점차 고조, 고려호텔측은 긴급히 한 여성 의례원(종업원)의 아코디언 반주를 곁들이기도 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김일성상을 받은 북측의 시인 김 철(67)씨의 시 낭송과 남측의 형인 김 한(72·서양화가)씨가 이에 화답해 노래를 부른 장면이었다. 김 철씨는 '웃으며 삽시다'라는 자작시를 통해 "형님 이제는 그만 울음을 그치자요. 이렇게좋은 날, 이렇게 기쁜 날 우리 무엇 때문에 울기만 하나요"라며 격한 동작을 섞어 소회를 표현했다. 김 한씨는 "북에 남겨놓은 동생을 만나는 데 50년이 걸렸다"며 '동무생각'을 구성지게 불러 참석자들의 감흥을 자아냈다.

이날 또다른 북측 가족은 북한주민이라면 대부분 다 외운다는 김 철씨의 시 '어머니'를 즉석에서 낭송해 김 철씨의 명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두차례의 개별상봉이 이어진 1일 밤 10시 허해룡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 주최 환송만찬에서 돌아온 남측 방문단은 동행한 이수진 적십자병원 의사의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고 평양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워낙 일정이 빡빡하고 추운 평양 날씨 탓에 감기증세와 피곤함을 호소하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많아 의사 이씨는 2일 새벽까지 고려호텔내 70여개 객실을 돌며 이들의 건강을 살폈다.

이씨는 "어제(1일)도 새벽 2시까지 회진했다"며 "고령인데 관절염 등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많아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특별히 이상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없다"며 "평양을 떠날 때까지 가족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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