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하시모토'의 入閣

몇년전인가 어느 여류 방송인이 쓴 '일본은 없다'란 책이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힌 적이 있었다. 필자가 2년간의 일본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체험을 담은 그 책은 부패와 자본주의적 방종속에 무너져내린 일본의 허상을 날카롭게 파 헤쳐 세간의 관심을 끌었었다. 아무래도 일본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는 '우리'인지라 '일본에 이제 무사도(武士道)정신은 존재치 않는다'는 그 책의 논지를 기분좋게 받아들인 기억이 난다. 정말 일본도 지금 우리처럼 형편없이 헤매고 있는 것일까.

5일 단행된 일본 개각(改閣)에서 2명의 전직 총리가 각료직을 맡은것이 새삼 눈에 띈다. 이미 입각한 미야자와 대장상이 유임된데다 순직한 오부치 게이조 전임 총리 바로 앞서 총리직을 맡았던 하시모토 류타로가 이번에 특명상으로 입각, 일본 내각에 전직 총리가 2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말이 쉬워 그렇지 새까만 후배 총리 휘하에 전직 총리이자 집권 자민당의 최대 파벌 총수인 하시모토가 입각한다는 것은 경직된 우리 정치 풍토로 미뤄본다면 이변에 가까운 일 아닐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금 일본도 정치권에 인재가 없어 난리다. 그래서 지난번 조각(組閣)때는 경제통인 미야자와 전 총리를 입각시켰고 미야자와는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일본 경제를 회생시킨 일등공신이 됐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시모토 또한 "일본을 위해서라면…"하고 선뜻 나선 것이다. 물론 하시모토 특명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에 입각함으로써 집권 자민당내 파벌 싸움으로 생긴 힘의 공백을 채우게 되고 그에따라 자연스레 총리로 권토중래 할수 있다는 계산을 했으리라는 짐작도 간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흔들리는 일본을 구하겠다는 구국의 충정이 있었기에 '후배'의 휘하에 기꺼이 들어간 것 아닌가 싶다.

보기에 따라서는 모리 요시로 총리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질 것만 같다. 아무리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도 좋지만 노회한 전임 총리를 둘씩이나 모시고(?) 사석에서는 "모리군…"이라 부르는 호칭을 감수하기보다 만만한 젊은 각료를 데리고 떵떵거리며 단 하루일지라도 힘있는 총리노릇 하는게 나을텐데 왜 이럴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역시 일본지도층이 나라 걱정하는 '사무라이'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만 같다. 동교동의 실세 가신들을 둘러싼 여권의 갈등을 지켜보는 우리 가슴은 더욱 착잡하기만 하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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