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상하는 새를 꿈꾸며

우리 집 큰아이가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이는 어느 한곳에 얽매이는 것을 유달리 싫어했다. 그 때문에 내가 살던 아파트의 발코니에는 안전장치를 해야만 했다. 5층 아파트 발코니의 엉성한 쇠창살 사이를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아이의 욕망을 막아야만 했다.

철망을 사서 쇠창살 사이로 아이의 어깨가 빠지지 않게 갖다 대었다. 그러자 아이는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촘촘한 철망 사이로 떨어뜨리며, 아파트 마당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곳에 플라스틱 슬레이트를 대어 아이가 밖을 내다볼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답답한 일상의 굴레

그 후 나는, 아이의 마음으로 이런 시를 썼다.

'나는 새장 속 아기새/철망 밖 하늘이 저리도 파아란 날엔/나도 훨훨 날고 싶어요.//여린 두 나래 치며 날다가 지치면/봄 오는 들길에 내려 종종 걸음 걷고 싶어요.//길 가 마른 풀섶에서 돋아나는 새 얼굴들이 보고 싶어요.//이제는 그 손길에서 나를 제발 풀어 주셔요.//그 손길 뒤로 보이는/오늘 저녁 하늘의 곱게 물든 구름 조각이 자꾸 나를 불러요.//아, 저 하늘에다 심을/작지만, 소중한 나의 꿈/꼭꼭 가슴에 품고 내 벗들과 어울려/거침없이 하늘을 날고 싶어요.//(나도 훨훨 날고 싶어요. 전문)

어린이잡지에 게재된 이 시를 처음 읽던 날, 나는 아이에게 다시 너른 하늘을 돌려주기로 마음먹고, 당장 슬레이트를 뜯어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

며칠 전 밤에, 나이 스물 셋이 된 큰 아이가 내게 대화를 청했다.

"아버지, 저는 한 직장에 매이기보다는 자유업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요"

"그래, 너는 어릴 때부터 한 곳에 매이기를 정말 싫어했지"

아이는 지난 학기부터 휴학하여 이런 저런 공부를 한답시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요즘은 가구점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곳은 아르바이트 이상의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의 현장에 부딪히면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신념이 한층 더 다져지길 나는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날 밤, 나는 아이들과의 대화가 끝나고 잠들기까지 내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아버지라는 권위로서 아이의 생각을 붙들려는 나의 의도가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음을 스스로 느끼면서도, 그 틀을 깨뜨리지 못했던 것이 오랫 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결국 나이 스물 셋의 아들을 아직도 나와 대등한 한 인간으로 배려하지 못한 내 옹졸함 때문이었다.

이제는 내 생활의 울타리 밖으로 아이를 내 보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히고, 자신의 생활영역을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피나는 노력 있어야 가능

나는 지금 사무실 창 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잔디밭의 몇 그루 감나무에는 까치밥이 하나씩 달려있고, 이제는 중늙은이가 된 모과나무에 너댓개의 모과가 샛노란 빛을 발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저것들마저 떨어지고 나면, 자식들 모두 떠나 보낸 시골 마을의 어버이 같은 겨울나무가 되리라.

갑자기 울타리 나무숲에서 새들이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순간 나도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망상에 빠진다. 나를 옭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잠시라도 훨훨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 때문일까?

언제나 제한된 용지(用紙)의 공간 속에 글 이랑을 지으며, 오로지 한 뙈기의 기름진 글밭을 가꾸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 일상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지금 내 속에서 꿈틀댄다. 쉴새없이 압박하는 주변의 온갖 것들로부터 잠시 떠나, 지금은 비상(飛翔)하는 한 마리의 새가 되고 싶다.

아들아, 너도 가끔은 비상(飛翔)하는 새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그래, 너도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꿈이 있을 테니까. 그렇지,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만으로 다 날 수 있는 건 아냐. 이제부터는 오직 날아야겠다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그 꿈은 현실로 다가오는 거야. 아들아!

대구시교육청장학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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