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공명이 유비를 주군으로 모시기로 결심을 하자 그의 스승인 사마휘는 한숨을 쉰다. 비록 "공명이 주인은 얻었으나 때를 얻지 못하였구나"하고. 제갈공명도 어쩌지 못했던 때(時)가 아닌가. 우리나라서는 '묻지마라 갑자생(24년 출생)'이라는 말이 있었다. 청년시절 대동아 전쟁도 치르고 또 6·25전쟁(한국전쟁)도 치른 세대이기 때문이다. 갑자생이 아무리 똑똑해도 두 번의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때를 잘못 만난 것이다.
생명이 왔다갔다한 갑자생 보다는 덜하지만 IMF 경제위기로 모가지가 가장 많이 잘린 50대의 불운도 보통이 아니다. 어느 직장의 경우 아예 50대가 사라진 곳도 있다니까. 젊은 시절 가정을 버리고 국가인간이 되어 피와 땀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선에서 일구어냈던 50대가 이제 그 보답을 받기는커녕 그 한강의 기적이 붕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가적 명분 앞에 또다시 가정과 자신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디지털시대에 한물간 아날로그 세대라는 이유로, 그리고 고참 1명이면 신참 2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야속한 경영방침 앞에, 50대는 용도폐기 된 가을철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있다. 아무리 50대가 잘 났다해도 50대만으로는 시대의 흐름인 제3의 물결(정보화)이나 경제위기를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역시 때를 잘못 만났다고 할 수밖에. 불운을 겪었던 나라였던 만큼 어느 세대라고 때를 잘못 만났다고 느끼지 않을까 마는-.
우리나라의 50대만 때를 잘못 만난 것은 아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미국에는 베이비 부머(46~64년생)세대가, 일본에는 단카이(團塊47~49년생)세대가 있다. 단카이세대는 젊었을 때 사생활은 버리고 소위 회사인간이 되어 개미처럼 일해 일본형 경제모델을 만드는데 성공, 그들이 40세 되던 해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을 앞지르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다 일본으로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90년대 들면서 구조조정의 표적이 되어 버렸다. 일본경제와 영욕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베이비 부머 역시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경제가 어려웠던 80년대 호된 구조조정의 쓴맛을 보았다. 그래서 10년 호황 속에서도 그때의 정리해고 악몽으로 인해 봉급인상 투쟁을 못하는 것은 물론 절제된 소비로 미국의 물가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신세다.
이들이 물러난 자리를 채운 것은 다름 아닌 30, 40대 소위 영 파워 그룹들이다. 경제계에서 미국경제의 상징인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45), 미국증시의 시가총액 1위인 GE의 제프리 이멜트(44)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파워들이 있다. 정계에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47), 러시아에는 푸틴 대통령(48)이, 헝가리에는 새로이 집권한 빅토르 오르반(37) 등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재계에서는 임원의 경우 50대는 환갑이라며 40대 시대가 선언되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30, 40대 돌풍이 불자 눈치 빠른 일본서는 노인정치의 해악(害惡)을 비판하는 노해론(老害論)까지 나왔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분법에서 다분법으로, 하드중심에서 소프트중심 등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그래서 대변혁의 저자인 미국의 제임스 마틴은 이렇게 외쳤다. "변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실제로도 그랬다. 정치나 경제의 패러다임을 재빨리 바꾼 미국은 호황을 누리고 변신에 늦었던 일본과 우리는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변화는 반드시 구원의 손길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경제를 살린 구조조정의 경우도 그렇다. 리엔지니어링은 각광받는 구조조정의 한 수단이었으나 창시자인 마이클 해머교수(버클리대학) 스스로 70%는 실패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부르킹스 연구소도 단기적으로는 유효하나 장기적으로는 불리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실제 상황에서도 미국 코네티컷주의 한 보험회사는 고참 간부들을 해고하여 14만 달러의 경비를 절약했으나 이로 인해 잠재고객을 잃은 것은 물론 신참사원 교육비에 1인당 5만 달러가 들어 전체적으로는 손해만 본 경험도 있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업종에 따라 기업환경에 따라 구조조정의 방향과 수단이 달라야 했던 것이다. 우리처럼 '48년 생 이하'식으로는 무리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함부로 한 정보화가 실패하듯 함부로 한 구조조정도 실패할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디지털 사고(思考)에 익숙하지 않은 50대는 일선현장에서는 아무래도 힘을 쓸 수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관리지휘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날로그의 감성이 디지털의 무감정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창 무르익은 50대의 경험과 노하우가 그대로 사장(死藏)되어서도 안 된다. 이는 바로 국력의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50대의 지천명(知天命)은 비록 불운 하나 50대의 역할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고도성장기에서 역사에 공헌하고 나라에 이바지 한 업적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말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지막 세대, 50대이니까.
서상호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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