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체의 신비 면역이야기-(4)사람을 지키는 상주균

보통 토양 1g 속에는 1억 마리 이상의 세균이 존재한다. 머릿수로만 본다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세균인 셈. 이 세균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 것이 17세기 후반 레이벤후크(네덜란드)가 만든 현미경이었다. 그후 세균은 수많은 질환을 일으키는 병원균으로 지목됐고, 인류를 괴롭히는 최대의 적으로 규탄 받았다. ◇인간을 지켜주는 세균

그러나 세균이라고 해서 모두 인류와 싸우려고만 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을 지켜주는 세균도 있다. 이들을 '정상세균총(Normal flora)이라 한다.

아이는 거의 세균 없이 태어난다. 하지만 산도를 통과하며 입과 인두가 오염되며, 그 후엔 세균들이 음식물을 통해 장으로 침투한다. 그리고 출생 몇시간∼며칠 내에 인간의 몸은 세균들에 점령 당한다.

그런 세균 중 정상세균총은 피부.점막.장 등에 상주하면서, 해로운 병원균으로부터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고, 인체 장기가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토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몸에 상주한다고 해서 '상주균이라 불리기도 하며, 그런 측면에서 인간은 인간이기에 앞서 이들의 생활무대가 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병원균과 싸우는 상주균

상주균의 가장 큰 역할은 병원균의 침투와 정착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 수단은 우리 몸에 있는 영양분을 두고 병원균과 경쟁하는 것. 영양분을 확보하지 못한 병원균은 굶어 죽는다. 그러면서 항균물질을 배출해 병원균이 우리 몸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괴롭힌다.

그 중 피부 상주균은 '지방산을 배출한다. 그 지방산이 피부를 산성으로 유지시켜 병원성 세균이 발붙이지 못하게 한다. 세수나 목욕을 해도 상주균은 여전히 상주한다. 목욕을 않았더니 피부 상주균이 더 늘어나더라는 증거 역시 없다.

장관 속 상주균은 병원균을 억제할 뿐 아니라, 우리 몸이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필수 영양소를 만들기까지 한다. 나이아신, 다이아민, 리보플라빈, 피리독신, 엽산, 판토텐산, 이이오친, 비타민K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류는 상주균의 눈치를 보며 살아 가야 할 입장인 것이다.

◇상주균도 죽이는 항생제

그러나 병원성 세균을 죽이겠다는 인간의 염원 덕분에 생겨난 항생제는 유익한 상주균까지 위협하고 있다. 항생제의 원조는 1928년 플레밍에 의해 발견된 페니실린. 어떤 의미에서건 인류 앞에 나타난 구세주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항생제는 감염 미생물뿐 아니라 상주균 중 감수성 높은 것까지 죽인다. 그러고 나면 상주균 불균형이 초래돼 되레 병이 생길 수 있다. 예컨대, 항생제를 투여하면 여성의 질 염증이 생길 수 있다. 질의 정상 세균총이 억제되는 대신 '캔디다라는 것이 과잉 증가하기 때문이다. 또 장관 속에서도 내성균이 과잉 증식하면 장염이 유발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항생제가 개발되면 더 많은 감염성 질환을 때려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균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그들 단세포는 항생제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을 터득해 '슈퍼 박테리아 같은 내성균으로 변하면서 인류 침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체에 유익한 상주균까지 없애는 항생제, 그걸 마구잡이 사용하는 오남용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다시 한번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너무 깨끗해도 탈?

미국 터프츠대 유전학자 스튜어트 레비는, 너무 철저한 미국인의 위생관념을 최근 비판하고 나섰다. 항균 제품이 인간의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유익한 세균마저 제거함으로써, 새로운 슈퍼 박테리아 변종의 성장을 촉진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었다.

레비는 "박테리아가 신체의 방어능력을 강화시키고 세균을 격퇴하는 등 인간에게 좋은 일을 한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고 환기했다. 특히 항균 제품 광고들이 더 심하다는 것. 이 때문에 항균제품 업자들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레비의 '뒤집어 보기는 "지나친 위생 의식이 되레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글: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도움말:서성일 교수(계명대의대 미생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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