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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NMD문제, 또 외교적 실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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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개최됐던 한·러정상회담의 예기치 못한 결과가 참으로 곤혹스럽다.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외교·경제적으로 적잖은 실속을 챙긴 반면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동맹국 한국이 러시아에 동조,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반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발표된 한·러정상회담 성명은 "72년(미소간에)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핵무기 감축 및 비확산에 대한 국제적 노력의 중요한 기반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명시했다.

이 성명대로라면 우리 정부는 ABM제한 조약을 개정해서 미국의 NMD(국가미사일방어계획)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부시행정부에 반대하고 NMD를 비난해 온 러시아·중국·북한에 동조하는 꼴이 되고 만다. 실상 이번 회담결과를 두고 러시아 언론은 물론이고 미·영의 언론들이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이 러시아에 동조하고 있다고 지적, 이번 정상회담은 '푸틴 외교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일이 이쯤되자 ABM제한조약과 관련 그동안 여러 국제회의와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의 관용적 문구를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며 러시아에 동조한다는것은 오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조항을 공동성명에 포함시키면서까지 러시아로부터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미국 NMD체제 구축을 두고 전세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 마당에 많은 국가들이 자기네 국익과 국제관계를 고려해서 저울질 하며 몸을 사리고 있는게 저간의 국제정세다. 그런데 이 판에 선뜻 러시아의 손을 들어준듯이 보인 이번 정상회담 결과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외교적 실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것이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야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야하는 등 난처한 처지를 십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3만5천명의 군인을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과 우리의 혈맹 관계에 비할 수는 없다고 본다. 물론 우리는 정부가 대미(對美) 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 유연성 있는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안보와 국방에 관한한 한·미공조의 바탕위에서 미국과 대화하고 설득해서 신중히 조율한후 국익에 따라 외교적 입장을 정리하는게 순리가 아닐까한다. 오는 7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정부는 우리가 러시아에 동조하지 않았음을 거듭 설명할 모양이다. 외교적 실수가 빚은 오해 때문에 우리의 최근 정치지도자가 구차한 변명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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