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적으로, 우리 문화는 지금 '닫힘'에서 '열림'으로 속도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은근에서 노골로, 일치에서 개성으로, 안에서 밖으로 치달으면서, 그간 닫힘의 상징이 돼 온 대원군의 쇄국의 문은 철거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 문화사적으로 큰 획을 긋는 듯한 이 거센 변화의 물결, 거부할 수 없는 담론이겠다. 사정이 이러하니, 변방에서 기웃대지 말고 적극 담론의 흐름을 탈 일이다, 내 기억의 필름에도 아랑곳없이….
예전에는 청춘남녀의 데이트가 지금 같지 못했다. 손이라도 잡아보고, 입술이라도 훔칠라치면, 남의 시선이 차단된 어두운 곳, 은밀한 장소, 밀폐된 공간이 그렇게도 아쉬웠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카페는 주로 지하에 있었고, 형광등의 조도는 낮았으며, 사각(四角)을 틈 없이 막은 칸막이는 각 테이블의 보호 벽 구실을 해냈다. 그래도 불안했던지 구석에 자리가 나면 횡재한 듯 했고, 그 자리를 확보했음에도 심장박동은 고르지 않았으며, 손끝은 그 위로 묻어나는 식은땀과 함께 가늘게 떨렸다. 안 떨려면 더 떨렸는데, 정말이지 죄인이 따로 없었다.
요즈음은 어떤가? 당장 벽의 개념부터가 달라졌다. 감추는 벽이 돼서는 못쓴다. 드러내는 벽이 돼야 벽이 벽다워진다. 허물어지는, 안과 밖이 차단된 카페를 자주 목격하지 않았던가? 밖이 훤히 보이는 안에서, 밖을 향해 정면으로 앉은 청춘남녀들이 보라는 듯 데이트 중이다. 과감하고, 솔직하며, 애정표현도 제 개성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그렇구나! 열림은 한편 다양함을 뜻하는구나! 다양하니 예전 같지 않고, 예전 같잖으니 신선하고, 신선하니 보기 좋다. 이것이 열린 문화의 매력. 그러니, "여기가 미국?" 따위의 구태의연한 심리적 저주, 이젠 삼가기로 한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그것은 '닫힘'의 문화에도 매력적 부분이 혹 있다면 적어도 그것만큼은 간직하자는 주문이다. TV나 인터넷이 저지르는 작금의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 화장실을 가도 '몰래 카메라'가 뒤통수에 붙은 듯한 느낌, 이러한 전에 없는 것들이 열린 문화의 매력을 '괴력'으로 바꾸기 전에. 손끝의 떨림, 그 드러나는 숨김, 이 내숭(?) 정도야 열린 문화가 수용해도 좋을 유산 아니겠는가. 제발, 싹쓸이는 말자.
가야대 교수.연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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