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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는 세상을 보는 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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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나서면 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처음 길을 나서는 어린아이처럼 발끝으로 조심조심 길을 더듬으며

어디선가 낯선 돌부리 하나 불쑥 발목을 잡아당길까 두려워

어느 틈엔가 마른 나뭇가지 하나 갑자기 목덜미를 낚아챌까 두려워

그러나 난데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람들의 곁눈질이 너무나 무서워

문을 나서면 나는 차마 걸음을 옮길 수가 없습니다'

(시집 '꿈은 슬픔을 가로질러 자란다' 중에서) 시각장애의 아픔을 시로 극복한 이수화(37.필명.사진) 시인. 지난 94년 '포도막염'으로 실명한 이씨는 그간의 절망감과 막막함을 시를 통해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실명을 한 뒤 한때 이씨는 '왜 하필 나인가'란 분노와 앞날에 대한 불안감, 갓 돌을 지난 아들과 아내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에 고통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92년 경북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한뒤 논문준비, 대학강사, 연구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학자의 꿈을 키워오던 이씨는 서서히 떨어지는 시력으로 인해 실명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함께 지내던 연구원, 학교 사람들의 걱정어린 시선마저 부담이 됐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끊임없이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이씨의 방황은 길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란 깨달음을 얻으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주변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 삶의 희로애락 등을 시로 표현, 96년 첫시집 '1등아 잘있거라 7등은'을 발간했다. 이어 실명에 따른 고통과 갈등, 꿈과 소망을 그린 두번째 시집 '꿈은 슬픔을 가로질러 자란다'를 지난해 발표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으로 인해 아직도 힘이 듭니다. 하지만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장애인들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도 시를 통해 꾸준하게 알리고 싶습니다"

이씨는 최근 10년전에 중단했던 논문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장애인의 고용, 노동 현실 개선에 도움을 주기 위해 공부하겠다는 이씨는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편견과 그릇된 시선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르듯 장애인은 신체 일부분이 비장애인과 조금 다를 뿐입니다. 특별한 시선으로 장애인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시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만난다'는 이씨의 작은 소망이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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