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고한 장기려(張起呂) 박사는 북녘 땅에 두고 온 아내를 기리며 '수절 남편'으로 살았다. 열흘 뒤면 평양에 돌아갈 수 있다는 발표를 믿고 남으로 왔던 그는 죽는 날까지 재혼을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기 위해서'였다. 통일이 되면 아내 곁으로 가기 위해 집 한 채도 갖지 않았다니 그 '일편단심'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가정과 자녀를 너무 쉽게 버리는 요즘 세태에 '고전적인 순애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지 모른다.
▲가정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요소'요 '마지막 보루'이며, 그 중심은 부부다. 가정이 건강을 잃으면 그 사회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부부 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자녀 출산을 원하지 않는 맞벌이 부부인 '싱커스(thinkers)족'들이 늘어나고, 결혼생활이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새 삶을 찾아 쉽게 이혼하기도 한다.
▲이혼을 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늘 행복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어느 부부나 갈등과 마찰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그 부피가 커질 수도 있다. 건전한 부부는 한 주일에 한번은 충돌하는 게 정상이란 말까지 있다. 오늘날 사회가 어지럽고 윤리.도덕이 날로 땅에 떨어지는 이유도 가정과 부부가 그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세계 최초로 '부부의 날'을 제정하려는 민간 차원의 움직임이 우리나라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보도가 보인다. 지난 1997년 발족한 '부부의 날 위원회'는 최근 국회에 국가기념일 제정에 관한 청원을 낸 데 이어 민주당 김중권 대표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면담, 입법화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오는 20, 21일 서울 여의도공원과 경남 창원, 부산 해운대 등에서 부부축제를 벌여 공론화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1999년 한해만도 하루 평균 994쌍이 결혼하고, 323쌍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체는 이 같이 부부 관계가 쉽게 무너지고 경제난 등으로 가정 해체가 가속화되자, 이를 지키려는 데 힘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주장 대로 5월 21일이 '부부의 날'로 제정될는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무튼 '부부의 날' 제정 움직임이 '건강한 부부, 행복한 가정, 밝은 사회'와 자꾸만 거리가 멀어지는 세태의 '역설'과 '안간힘'으로 읽혀 마음은 더욱 무거워지기만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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