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한국인 집단 납치 사태에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 재외국민안전대책단의 단장을 맡아 캄보디아로 향했던 김병주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경기 남양주) 청년을 포함한 우리나라 청년 3명을 감금 상태에서 구출했다고 알렸다.
구출기를 살펴보면 구출 작전이 무산될 뻔한 위기를 김병주 의원의 기지로 거듭해 넘긴 상황이 담겨 있다. 아울러 캄보디아 현지와 한국을 지속해 연결하며 얻은 정보로 감금된 청년들의 소재를 찾은 노력, 현지 정부 고위 관계자·경찰을 끈질기게 설득해 신속하고 정교한 구출 작전을 이끌어낸 모습도 확인된다.
김병주 의원은 18일 오전 5시 32분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캄보디아에 감금됐던 경기 남양주 청년 정모군과 한국 청년 2명을 마침내 고국의 품으로 데려온다"면서 "이틀 밤을 지새우며 마음 졸였다. 구출 작전이 노출돼 정군에게 위해가 가해질까 노심초사 했다.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와 재외동포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 같은 일"이라며 경과 보고를 시작했다.
▶김병주 의원은 "세 사람을 구하기 전까지 마치 첩보 영화를 찍는 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 15일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르던 날, 경기 남양주 청년이 구금돼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즉, 캄보디아행 당일 갑작스럽게 해당 청년의 구금 사실을 접했다는 것. 사전에 정보를 충분히 얻어 캄보디아로 간 게 아니었고,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처지였다는 얘기다.
김병주 의원은 "정군 어머니의 절규를 전해 듣고 꼭 구해서 돌아오겠다는 일념으로 비행기에 올랐다"면서 "현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교포들을 비밀리에 만나며 정군이 감금된 곳을 수소문했지만 (캄보디아 수도)프놈펜 어느 부근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걱정에 입이 헐고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내 놓고 상의할 수도 없을 만큼 현지 상황은 위험했다. 함께한 의원님들께도 대략적 내용만 말씀드렸지 세부 상황을 공유할 수 없었다. 한 순간의 방심으로 청년의 목숨을 빼앗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라고 당시 보안을 기민하게 유지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보좌진과 새벽까지 논의해 정군의 부모님을 설득했다. 보좌진의 노력으로 정군의 친구를 찾았고 친구를 통해 캄보디아의 정군과 SNS 화상 접속을 시도했다. 친구는 정군의 캄보디아 일자리에 관심을 보이는 척하며 마침내 정군의 은신처를 포착했다"며 "통화에서 정군은 감시인의 눈치를 살피며 은밀히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보좌진과 친구는 정군이 감금돼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현지에 대기 중인 저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해왔다. 그 후 보좌진과 첩보전을 펼치 듯 소통하며 캄보디아에서 대한민국 청년 구출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지에 교포로 있던 후배에게 간청해 프놈펜 시가를 누비며 캄보디아 인사들과 첩촉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마침내 경찰이 정군 구출에 나서게 되자 눈물이 날만큼 기뻤다. 한국에서는 정군 친구의 헌신적 도움으로 정군과 접속이 이어지고 드디어 구글 어스를 통해 정군의 은신처를 파악했다"며 "그러나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다. 정보가 누설되면 범죄조직이 더 깊이 숨을 수 있고, 그러면 정군이 더 위험해 질까 두려웠다. 현지 경찰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정군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아파트형 호텔 수색을 간청했지만 캄보디아 경찰은 신중해야 한다며 오히려 저를 만류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정군의 소재를 파악하던 중 위기가 한 차례 닥쳤다.
김병주 의원은 "현지 후배와 교포 몇 명과 의논해 단독으로 찾아갈 방법을 고민하는데 한국 보좌진에 급한 문자가 도착했다. 보안을 위해 SNS로만 통화했는데 여러 곳을 다니다보니 인터넷망이 부족해서 전화를 받지 못하자 문자 폭탄을 보낸 것"이라며 "내용은 정군을 감시하는 인원이 무기를 소지하고 있으니 절대 개별 행동을 하지 말라는 신신당부였다. 교포들에 의논하니 은신처가 확실해도 경찰 회의만 4~5일 걸리고 실제 현장 급습은 20일 넘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교포들의 예언처럼 곧바로 현장 구출은 어렵다는 캄보디아 경찰의 답변이 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에 그는 예정됐던 일정을 수정키로 했다. 자신은 정군 구출에 매진하기로 한 것.
김병주 의원은 "귀국일은 17일. 반나절 밖에 안 남았다. 그러나 현지 상황을 인정하고 돌아 올 수는 없었다. 한 청년의 미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며 "남은 의원 일정에서 저는 빠지기로 결정했다. 함께 간 우리 의원님 3분께 일정을 맡기고 다시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들 찾아다니며 간절하게 매달려 설득했다. '우리 국민이 있는 곳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돌아갈 수 없다. 캄보디아 국민이 외국에서 똑같은 상황에 빠져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을 포기한 내가 어떻게 앞으로 정치를 할 수 있겠나?'. 첫날 만난 캄보디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찾아니며 읍소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현지 경찰이 급습 작전에 돌입했다.
그는 "하늘이 도왔는지 캄보디아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위 정부 각료들이 돕겠다고 나서 줬다. 마침내 정군 구하기에 나섰다. 제가 17일 귀국을 포기한 2시간 전에 캄보디아 경찰이 정군이 숨어 있다는 아지트를 급습하겠다는 사실을 통지해 왔다. 최소 20일이 넘게 걸린다는 경찰의 현장 급습이 반나절 만에 결정된 것"이라고 강조하며 "전화를 받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고국에 아들을 기다릴 부모님을 생각하니 울음보가 터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또 위기가 발생했다. 정군 소재지로 파악한 장소에서 정군이 보이지 않았던 것.
김병주 의원은 "가슴을 졸이며 경찰의 구조를 기다리는데 현장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왔다. 우리가 지목한 호텔형 아파트 13호실을 급습했는데 정군이 없다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호텔형 아파트는 A·B·C 3동이 있는데 몇 동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며 "늦은 밤, 한국 보좌진에게 전화를 했다. 파악 후 바로 전화를 주겠다고 했지만 얼마 후 구글 어스로는 몇 동인지 파악이 어렵다는 절망적 답변이 돌아왔다. 국민을 눈앞에 두고 못 찾는다 생각하니 멕이 풀려 주저 앉고만 싶었다"고 당시 심경을 짚었다.
이어 "그 순간,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캄보디아 경찰에게 남은 A동과 C동을 바로 급습해 줄 것을 간청했다"면서 "범죄집단의 특성상 서로 연락이 돼 바로 도망칠 것이 뻔했다. 일각이 여삼추였다. 다급한 요청에 다시 경찰의 수색이 신속히 재개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듯 급히 흐르고, 얼마 후 전화벨이 울렸다. 가슴이 터질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화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전화 내용은 이랬다.
"김 의원님. 정군을 찾았습니다."
김병주 의원은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캄보디아 경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고 전했다.
"축하합니다. 다른 두 명의 한국 청년도 함께 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한국 청년 3명이 곧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다"며 "협조해 주신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우리 국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정군을 찾아나서는 가장 큰 힘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현지 파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해 주신 정청래 대표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올린다"고 적었다.
이어 "저는 내일 한국 청년 3명의 조속한 귀국을 마무리하고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겠다"면서 "충성!"이라고 경례 구호를 외치며 후기를 마무리했다. 김병주 의원은 대한민국 육군 대장 출신이다.
김병주 의원은 출국 당시였던 지난 15일 오후 6시 41분쯤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청년들을 구출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출발한다. 그 어떤 위험이 있어도 몸을 사리지 않겠다. 국가에게 있어 국민의 생명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며 "한 명이라도 더 구출하고 돌아오겠다"고 적었는데, 이 말을 현실로 보여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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