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목월생가

이상(李箱)은 "사람에게 비밀이 없는 것은 집에 재산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시인다운 말이다. 누구나 가슴에 소중한 비밀 한둘씩 숨겨 두고 산다. 아름다운 비밀이 많을수록 풍부한 삶을 사는 것이라면 억지 춘향일까? 나도 그런 몇 개의 비밀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다. 박목월 시인의 생가(生家)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 비슷한 걸 끼적였다. 중학 3년동안 고향인 월성군 아화(지금은 경주시 서면)에서 경주까지 사십리길을 기차 통학을 하면서 꼬마시인 흉내를 내곤 했다. 모량역을 지날 때쯤 내 눈은 어느새 단석산 아래에 가 멎곤 했다. 목월 같은 큰 시인이 되리라고 다짐하면서 내 마음 속에 턱 하니 큰 당산나무로 자리잡은 목월. 저 산 아래 시인의 생가가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한번도 목월을 만난 적이 없었다. 10대 후반, '목월전집'을 가지고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하였고, 목월이 발행하던 월간 시전문지 '심상'도 내 시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목월이란 이름을 안지 30년, 소중한 보석을 잃을까봐 가슴 한켠에 숨겨두고 찾아가지 않았던 목월 생가. 2년 전 진달래가 흐드러진 봄날, 경주 남산에 올랐다가 그만 목월 생가로 들어가 버린 것이 아닌가? 정말 우연이었다.

'강나무 건너서/밀밭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외줄기/南道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어느새 목월의 시를 흥얼거리면서 홀가분한 나그네가 되어 있었다. 복사꽃이 핀 열두구비 해거름의 외줄기길,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시인의 유년을 따라가고 있었다. 한 10여분쯤 걸었을까? 담벼락에 붙은 청동판이 유일하게 목월의 생가터임을 알려준다. 시인의 체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인의 생가란 영혼의 고향이다. 시인의 체취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공간, 그 소중한 영혼의 자산을 지키고 가꾸는 것은 뒤에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목월 생가를 다녀온 순간 장롱 깊숙이 숨겨두었던 보석을 잃어버린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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