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감자 꽃잎 지는 초여름이었습니다. 아버지 동네 부역 나가시고,
어머닌 오 일만에 드는 이십 리 읍내의 의성장 가시고
오빠들마저 학교에 간 정오는
덕지덕지 고요가 쌓였습니다.
아, 풍요해진 고요는 사립짝을 밀치고 나와
휑한 동네의 구석구석을 마저 채웠습니다.
앞산자락 참나무 사이 뻐꾹새 흐드러지게
고요를 읽고 있을 때
나는 가슴 한 자락 살포시 펴고
묘사 끝, 음복떡 보자기에 챙겨 담듯이
그 소리 담았습니다.
이내 소리들은 졸음이 일고
졸음 든 소리를 베고 누워 따라 잠들었습니다.
-김기연 '감자꽃잎 질 무렵'
도시에 나와 살면서부터 언제부터인가 감자꽃이 피고 지는 시절을 잊어버렸다. 선배 시인은 자주감자에는 자주꽃, 흰감자에는 흰감자꽃이 핀다는 세상의 철리(哲理)를 노래한 바 있지만 감자꽃 피고 지는 시절을 잊어버린 때부터 나도 세상의 이치를 거역하면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산업화, 도시화되면서 인간들은 흙을 떠나서 살게 되었다. 이런 도시의 삶을 두고 서양의 시인 릴케는 '죽음의 삶'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파트에 갇혀 지내는 내 삶을 오늘 새삼 되돌아본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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