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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시론-이성적인 사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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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온통 싸움 투성이다. 아이들 교실에서부터 점잖은 어른들의 정치판에 이르기까지 볼썽사나운 싸움판이다. 욕설과 험담은 예사고, 툭하면 멱살잡이요 필사적인 상대 죽이기 싸움이다. 한마디로 싸움판 사회인 것이다.

어려운 사회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싸움과 갈등이 없는 사회는 물론 없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부부 사이나 기업들 간에나 여야간에도 싸움은 늘 있게 마련인 것이다. 오히려 잘만 하면 싸움을 통해서 서로가 득을 볼 수도 있다. 윈윈게임이란 것이 그런 거다. 상대의 비판을 잘 새겨듣기만 하면, 자신의 문제와 약점을 고쳐 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싸움들이 어떤 싸움이냐 하는 것이다. 신사적인 싸움과 막가파식의 진흙탕 싸움, 페어플레이와 더티 플레이, 모두에게 득이 되는 싸움과 모두를 공멸케 하는 싸움 가운데, 우리가 매일 매일 나뒹구는 싸움판은 대체 어떤 싸움판인가 하는 점이다.

답은 안타깝게도 후자다. 우리는 늘 매우 못된 싸움들에 시달리고 있다. 저급한 이전투구와 룰도 명분도 팽개친 더티플레이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유익하기는커녕, 심지어 구경꾼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우리 모두를 환멸케 하며, 우리 사회를 퇴보하게 만드는 싸움들인 것이다.

며칠 전에는 부부싸움 끝에 남편이 아내의 두 발을 전기톱으로 잘랐다는 끔찍한 보도가 있었다. 그 하루 전날에는 한 남자가 부부싸움 끝에 집에 불을 지른 사건과 또다른 한 남자가 교회에 불을 지른 사건들이 있었다. 또 그 며칠 전에는 주차한 시위 차량의 유리를 때려 부수는 장면이 TV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병원에 실려가는 경찰 간부의 사진도 보였다. 온 몸에 맥이 빠지고 주저앉고 싶은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데 있다. 높으신 정치인들도 일년 내내 더티플레이요 이전투구다. 연일 험한 욕을 퍼붓는 그들은 도대체 어떤 체질을 타고났는지 신기하기조차 하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나라를 분열과 위험에 빠뜨릴 거짓말과 선동도 불사한다. 그런데 요사이는 언론까지 못된 싸움판에 끼어 들었다. 늘 싸움판의 심판자로 한마디씩 하던 언론이 요즘은 죽고살기로 삿대질이요 욕질이다. 명분도 약하고 논리적 일관성도 없으면서, 오로지 이겨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만이 아까운 지면을 메우고 있다. 언론인 특유의 냉정과 객관성은 물론, 최소한의 체면도 팽개쳤다.

한마디로 이성(理性)이 끼어들 틈이 없는 싸움판들이다. 최소한의 룰과 공존의 윤리는 찾아보기 어렵고, 탐욕과 적나라한 본능만이 싸움판을 지배하고 있다. 광기(狂氣)의 사회인 것이다. 제 정신인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너무도 피곤한 사회인 것이다.

싸움을 하더라도 이제는 격을 좀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절제된 언어, 상대를 인정하는 합리주의, 균형잡힌 관점, 이성적인 토론, 엄격한 자기규제의 덕목들을 키워가야 한다. 그래서 저질 싸움꾼이 아닌 고급 논객으로 우리 모두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도 그래야 하지만 특히 정치인, 언론인, 교육자의 책임이 매우 크다. 우리 아이들이 무조건 이기는 법이 아닌, 격조 높게 싸우다 멋있게 승복하는 신사의 도를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 더 이상 환멸을 안고 조국을 등지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다. 흔히들 감성의 시대라 하지만, 이성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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