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통마을을 찾아서-문경 한두리마을

문경시 점촌읍에서 산양면을 거쳐 동로면·단양 방면으로 국도를 따라 가다가 산북면 소재지를 지나면 곧바로 닿는 곳이 문경시 산북면 대하 1리. 조선조 황희 정승의 증손 황정(세조때 대사정)선생의 아들 황사웅이 산자수려한 이곳에 이주하면서 터를 잡아 황씨 집성촌을 이루고 살게 된 유서깊은 마을이 있다. 선비 황사웅이 이곳에 이주하면서 도와 덕을 닦아 군자가 사는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한두리(大道村)라고 불리며 오늘에 이른다.

민속주 호산춘(湖山春)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마을은 장수황씨 사정공파 종택과 황희정승 유물각이 한눈에 들어 와 마을어귀 먼 발치에서도 한눈에 양반촌임을 실감케 한다.

문경지방 양반 전통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는 종택은 배산임수형의 전통적인 여건과 자연적인 정원이 한껏 어우러져 건물배치가 친환경적인 특징을 지녔다. 현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40여가구 주민 가운데 장수황씨는 8가구뿐으로 대부분 인접한 마을에 20여가구가 흩어져 산다.

경북도 문화재자료 236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는 장수황씨 종택은 황희 정승 8대손인 조선 명종때의 칠봉 황시간(黃時幹·1558~1642)선생이 살던 곳으로 종택의 역사가 400여년임을 알 수 있다. 원래 종택에는 황희 정승이 남긴 옥연·옥서진·산호연·서각대 등 네가지 보물(四寶)이 보존돼 왔으나 도난이 우려돼 지금은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다. 또 황씨 집안의 자랑거리인 분재문서(分財文書)도 황정선생이 1500년에 아들 황사웅에게 내린 것으로 지금까지 500년 동안 가보로 전해진다. 이 유물을 현지에 보존하기 위해 경북도는 유형문화재 123호로 지정하고 지난 1983년 황방촌 유물각까지 마련했으나 도둑이 설쳐 이곳에 보관하지 못하고 있다.

종택은 황씨 종친회장 황의각(66·산북면)씨가 관리를 맡고 있으며 도와 시의 지원으로 종택담장 등이 하나하나 보수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부분이 정비·복원되지 않아 마을을 찾아 온 방문객들을 안타깝게 한다.

황시간 선생은 문경지방의 대표적인 거유로 형조좌랑을 역임하고 만년에 향리에서 정우정(淨友亭)과 도천정사(道川精舍)를 지어 놓고 후학지도와 농업장려 등 고향에 걸맞은 뜻있는 일을 많이 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앞 한두리보를 축조한 주인공이기도 한 그의 뜻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벼농사와 버섯재배, 수출용 조경수 생산 등 앞서가는 농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탱자나무 2그루는 수령이 무려 400년. 경북도 기념물 135호로 지정돼 이 마을 수호신이자 자랑거리다.

민속주 호산춘은 지난 91년 11월 경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장수황씨 21대 종부인 권숙자(70) 할머니가 아직도 직접 빚어낸다. 500년을 이어온 이 술은 장수황씨 종부들에 의해 대대로 빚어져 온 제주(祭酒)이자 가양주로 그 옛날 마을 앞 금천의 맑은 물을 떠오고 뒷산 솔잎을 따다 찹쌀로만 빚는 맛이 독특한 술이다. 담황색의 맑은 빛깔에 솔향이 그윽하고 안동소주 등 여타 전통주와는 달리 주도가 10도 안팎으로 독하지 않다.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짜릿한 느낌을 준다. 쌀 한되로 호산춘을 빚어내면 술도 마찬가지로 한되밖에 빚지 못하는 귀한 술로 전국 애주가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종택 인근 바위에 새겨진 석학(石鶴), 성옹유거(惺翁幽居) 등 각종 음각 글씨는 숱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나그네를 반긴다. 이곳 황씨들은 이제 직장따라 결혼으로 각자의 생활을 찾아 점촌 예천 상주 등 곳곳으로 흩어졌지만 450년을 황씨 집성촌으로 이어 온 마을은 갖가지 유적들과 흔적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경·윤상호기자 younsh@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