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열대야는 한풀 꺾였는데

어제는 절기상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였다. 열대야를 식혀주는 시원한 비가 내렸다. 그러나 날이 개면 다시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다. 말복이 아직 1주일이나남았기 때문이다. 삼복더위 중에 웬 가을절기일까.

절기는 양력을 기준으로 한달에 두개씩 들어 있다. 원칙적으로 양력의 상순에 들어가는 입춘 경칩 청명 등은 절기(節氣), 하순에 들어가는 우수 춘분 곡우 등은 중기(中氣)라 한다. 따라서 24절기는 12절기와 12중기로 구분된다. 음력은 29일인 달이 많으므로 절기나 중기가 하나만 들어 있는 달이 생기게 된다. 19년마다 7번씩 두는 윤달은 중기가 없는 달을 그 전달의 윤달로 정한다. 이를 역법에서는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 한다.

절기는 고대 중국 주나라때 화북지방의 농사와 기상상태를 토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겨울철 "대한이 소한집에 왔다 얼어죽었다"는 말이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다.

열대야 정국, 찜통 경제

그러나 우리는 전통적으로 절기를 보고 계절을 가늠해왔다. 절기로만 따지지 않더라도 여름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피서여행이 이번 주말을 고비로대충 끝나면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고 뜨거웠던 대지도 점차 식게 된다. 잠 못 이루는 열대야도 길어봐야 며칠이다. 동해안 해수욕장도 바닷물이 차가워져 1, 2주일내에 모두 폐장하게 된다. 그때 쯤 깊은 밤이면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뜨겁고 힘겨운 여름은 그렇게 가고 있다.천만다행으로 우리지역은 피해갔지만 지난달 게릴라성 호우에 따른 중부지방의 수해는 가슴아픈 일이었다. 또 병약한 노인들이 찜통더위를 견디지 못해 변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않아 노부모를 모신 사람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기도 했다. 전기요금 누진제 실시로 모처럼 큰마음 먹고 장만한 에어컨을 자린고비처럼 구경만 했다는 가정도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짜증스러웠던 것은 올 여름 정치판이었다. 서민들이 땀범벅을 하며 여름나기를 하는 동안 정치인들은 때아닌 창씨개명, 친일논쟁에 사회주의 색깔공방까지 곁들이며 과거 들추기에 골몰했다. 무슨 짓거리인지 모르겠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체임에 휴가비 한푼 못받은 월급쟁이들의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삼겹살 회식 한번 해본지가 언젠지 모르겠다"는 직장인들의 푸념은 들리지도 않는가. 나라 안팎의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불황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구조조정 이야기는 일상화됐고 경제의 견인차역인 수출은 가파른 감소세를보이고 있다. 국민의 정부 분야별 4대개혁은 이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조차 없다. 웬만한 경기부양책은 일시적 약발조차 듣지 않는다. 개혁 피로도는 높아져만 가고 있다.

최대공약수 찾아내야

남북관계도 지지부진이다. 제대로라면 늦어도 이번 8.15에는 서울에 와야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울 대신 러시아를 방문한 뒤 급할 것 하나 없다는 듯 오늘밤 특별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거쳐 유유히 평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경기의 바로미터인 주가는 미국경제와의 동조현상으로 나스닥 지수의 등락에 울고 웃는 형편이다. 주식 한주 없는 서민도 아침뉴스의 미국 증시소식에 귀를 쫑긋거려야 할 판이다. 열대야의 긴 터널이 지나고 가을이 와도 나라 사정은 쉬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우왕좌왕하는 개혁, 방만한 경영의 책임을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기업인, 자기목소리만 내는 노조, 대권경쟁에만 골몰하는 정치인, 비판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는 정권,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맞은 설익은 국제화 등등, 산적한 문제들이고 하나하나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개혁은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 공약수는 있을 것이다. 그 최대 공약수가 무엇인지 원점에서 다시 점검해 볼 때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