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평에서 내려 오면 삼거리 갈림길. 층층폭포 방향과 군사용 도로 방향이다. 오른쪽 층층폭포쪽으로 깎아지른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오니 출렁다리. 출렁다리에서 펼쳐지는 장관. 바로 층층폭포다. 이 깊은 산, 생각도 못했던 폭포수. 수직으로 내려 꽂히는 물길. '우우∼웅'. 낙수 소리가 더없이 우람하다.
한 구비씩 내려가니 폭포. 또 폭포. 다시 폭포. 연달아 3개가 이어진다. 전국 어느 폭포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계곡 아래로 발을 디디니 칼로 빚어 놓은 듯한 평평한 바위군. 아파트 계단처럼 층계를 짓고 있다. 거기다 산 아래와는 비교가 안되는 서늘한 바람. 인간을 압도하는 사방 산세마저 마냥 아름다울 뿐이다.
유리알 같이 맑은 물. 그 물에 발을 담근다. 짜르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냥 차가운 것만이 아니다. 물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때까지 씻겨 내려 가는 듯 하다. 그렇다고 깊지도, 넓지도 않다. 그러나 산행의 맛을 음미하다 보면 땀은 어느샌가 말라버린다. 콧노래가 나온다. 가을을 만난 것 같다. 긴 열대야. 올 여름 도심은 어느해보다 무더웠는데, 계절의 시계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법. 입추(7일)가 지나고 이제 말복(15일)과 처서(23일)가 기다리고 있으니 삼복더위도 머지않아 꼬리를 내리겠지. 사자평에서 도심보다 한발 먼저 가을을 만난다.
경남 밀양 재약산. 억새와 표충사로 대표되는 명산. 가지산, 운문산 등 영남알프스의 한복판에 있어 가을이면 억새가 그리워 즐겨 찾는 산. 바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억새명소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시원한 폭포수와 찬 계곡물이 산행객을 반겨준다.
◈사자평 벌써 가을 느낌
산행길은 많지만 가장 빠른 길은 내원암쪽이다. 표충사 일주문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내원암 가는 길. 효봉선사 부도를 끼고 대숲사이로 오른다. 이정표가 잘 돼 있다. 이정표를 보면 표충사에서 사자평까지 2.9㎞. 길은 가파른 편이어서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은 잡아야 억새 능선에 도달한다. 사자평에서 왼쪽 바위산이 사자봉(1,189m), 오른쪽은 수미봉(1,018m)이다. 흔히 천황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일제때 붙여진 이름이라 하여 우리 이름 되찾기의 하나로 지금은 대부분 재약산으로 불린다.
사자평의 전설적인 고사리 분교터. 산골 아이들의 추억의 배움터요, 폐교 이후에도 사자평·재약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고사리 분교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안내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책읽고 뛰어 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에서 어릴적 추억을 떠올리던 곳, 고즈넉한 분위기만 더한다. 민박집과 식당들도 모두 없어지고 일대 전체가 초지로 조성돼 있다.
◈흑룡폭포 낙하 물길 장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몸을 돌린다. 이때까지가 온몸이 흠뻑 젖는 고생길이었다면 내려가는 길은 더위를 식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로 층층폭포 계곡길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폭포 밑으로 바로 내려 갈 순 없지만 멀리서 보기만 해도 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시원스럽다. 차갑게 들리는 물소리는 마치 바위에서 솟는 듯 하다.1.2㎞ 아래 흑룡폭포도 반석을 타고 떨어지는 물길이 장관이다. 눈짐작으로도 높이가 70, 80m는 족히 될 듯 하다. 중간에 소(沼)를 거쳐 낙하하는 물길이 아담하기만 한 여느 폭포와 달리 힘이 넘쳐 보인다. 깊은 골짜기를 가득 채우겠다는 듯 기세가 맹렬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어디에 자리를 잡아도 산행의 피로쯤은 말끔히 날릴 수 있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피서를 즐기기에 나무랄 데가 없다. 울산에서 왔다는 박제호(47·울산시 남구 신정동)씨는 "20번 넘게 재약산을 찾았지만 올때마다 늘 새롭다"며 "계곡 물소리를 따라 걷다보면 더위도 저만치 물러나 있다"고 말한다.
◈호젓한 계곡 수풀길 운치
여름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표충사를 마주보고 사람들이 들끓는 계곡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사자평·층층폭포 안내판이 나온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계곡 수풀사이를 20분정도만 오르면 갑자기 행락객이 뚝 끊긴다. 여기쯤 적당한 곳에서도 호젓한 하루를 보낼 수 있어 그만이다. 1시간 정도 더 오르면 흑룡폭포. 흑룡폭포에서부터 길은 가파르다. 발길을 무겁게 한다. 40분 정도 땀을 쏟으면 층층폭포를 만날 수 있다. 과거 작전도로로 오르던 길은 통제하고 있다.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때 창건한 고찰이다. 서산, 사명, 기허 등 고승을 배출한 명찰로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진분홍빛 백일홍나무가 경내를 활짝 밝혀 주고 있다. 조선조 선조가 사명대사에게 하사한 가사 등을 모셔둔 유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표충사 들머리 수백년 된 소나무길도 운치를 더한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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