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주말의 느긋함과 호젓함을 만끽하며 책상 위에 놓인 조간 신문을 보는 시간에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은 전에 함께 근무했던 직원. "축하라니, 무슨?" "모르셨어요? 지점장님, 발령이 나셨는데요". 내용인즉슨 내가 어젯밤 늦게 본점부서로 인사발령이 났다는 거였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우리들 인간이긴 하지만 아무튼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된 데 실소하며 '현직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웬 발령? 한창 일선 지점장으로 재미를 붙이고 있는 터에 무슨 느닷없는 일인지?' '항상 감사하라!'는 말씀을 늘 되새기고 있으면서도 일순 당황스럽고 맥이 풀리는 느낌이다. '그러잖아도 지점장들의 이동이 잦다는 고객들의 불만을 IMF시대 탓으로 돌리며 애써 무마해왔는데 이번에는 내가 통상보다 훨씬 더 짧은 기간에 움직이게 되다니 고객들께 무어라고 양해를 구해야 하나' 마음이 착잡하다.
일단 아내에게 이동 사실을 전화로 알린다. 그런데 결정적인 경우에는 역시 여성쪽이 강한 법인가. 아내는 일언지하에 "잘 된 일"이라고 말한다. '하루에 세 시간 가까이 출퇴근길 운전 안하게 된 것만도 어딘가'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렇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감사할만한 일 뿐인 걸' 마음을 조금 고쳐 먹어본다. 그래도 역시 금방 마음이 평안해지지는 않는다. '고객들과도 친해지고 지점일도 그런대로 재미있어지는데 이제 또 본점에 들어가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하나. 지방에서 올라와 금방 풀어놓은 사무실의 짐들(주로 책들이지만) 싸는 일도 만만한 일은 아니고.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인지' 등등 마음 한 구석 찜찜한 채로 퇴근한다.
저녁때 아내가 책을 한 권 내민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오래 전 사놓기만 하고 시간에 쫓겨 읽지 못한 것인데 아내가 먼저 읽은 모양.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일 거라고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으니 지금 곧 읽어보라는 말을 덧붙인다. '뭐 지금까지 아내말 들어 손해 본 거야 없지' 속으로 되뇌며 읽기 시작한다.'변화'가 필요한데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주로 핑계 또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로부터 많은 깨우침을 받는다. 주인공들의 주식(主食)인 '치즈'가 이미 없어졌다면 그 치즈를 누가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책임 전가하거나 누가 그 치즈를 옮겼는지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행동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예기치 못하게 일어나는 직장의 환경 변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닐 때는 당연히 당황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 인생길과 마찬가지로 앞일을 모르기 때문에 적극적인 면에서 스릴 넘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환경이나 여건에 지배되지 않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어느새 밤 11시. 조금은 마음이 느긋해진다. 어떠한 환경에서든 새로운 '미로찾기'의 길을 나서겠다는 나름대로의 각오가 서기 때문이다. 이제 하루와 한 주간을 닫으며(새로운 하루와 한 주간을 '여는'것이기도 하다) 속으로 말한다. '그래 오늘의 염려는 이걸로 족하다.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 것이므로'.
(권택명·시인·외환은행종합기획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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