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34) 불임 여성의 욕망과 착각을 노래한 메뚜기 노래

문을 열면 온갖 풀벌레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드센 매미 소리 탓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메뚜기 소리도 한몫 한다. 메뚜기는 소리를 내서 서로 소통할 뿐 아니라 뒷다리를 이용하여 멀리 뛸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소리는 주로 날개와 다리를 마찰해서 내는데 종류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메뚜기의가장 큰 특징은 역시 멀리 뛰는 능력이다. 뒷다리가 길고 강하여 뜀뛰기 선수처럼 아주 멀리 뛴다. 매미 소리도 여름 한 철이고 메뚜기 뜀박질 또한 여름 한 철이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제 철을 만난 듯 김종필 대망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평소에잠잠하다가도 선거철만 닥치면 도지는 고질병이다. 이미 빛 바랜지 오랜 내각제 개헌 카드도 다시 내들었다. 자신의 몽니와 대망론이 우리 정치를발목잡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시대착오적인 대망론과 경륜론을 들먹일까. 마치 아이들이 메뚜기 뒷다리를 잡고 놀리며 자신의 기대를 읊조리는 것처럼 보인다.항굴래야 방아 쪄라

사래기 받아 떡 해주께

사립 밖에 손님 온다

사래기 받아 떡 해주께

산 넘에도 손님 온다

항굴래야 방아 쪄라

영덕 사는 조순남 할머니의 방아깨비 노래이다. '떡방아 찧어라 콩방아 찧어라' 방아깨비 뒷다리를 잡고 놀리며 부르는 아이들 노래이다.방아깨비가 뒷다리에 온몸을 의지하고 아래위로 움직이는 모습이 디딜방아 찧는 형상이다. 따라서 이름도 방아깨비이고 노래도 방아찧는 상황을 그린다. 항굴래는 방아깨비의 사투리이다.

방아 찧는 시늉을 하면서 노래하는 내용은 한결같이 떡이 먹고 싶다는 것이다. 떡이 가장 귀한 별식이었으니 아이들의 간절한 희망사항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다 떡보였고 떡자루였다.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주면 주는 대로 다 먹어치울 정도로 떡이귀한 시절이었다. 명절이 되거나 제삿날이 닥쳐야 비로소 떡 구경을 할 수 있다. 평소에는 손님이 와야 떡을 한다. 떡은 손님대접을 위해 만드는중요한 별식이다. 따라서 산 넘어에도 손님이 오고 사립 밖에도 손님이 온다며 떡방아를 재촉한다. 아예 싸라기로 떡을 해주겠다고 노래한다. 떡만드는 상황을 노래함으로써 기대하는 꿈을 이루려는 것이다.춤추라/ 정의 대정 굿구경 가게

춤추라/ 정의 대정 굿구경 가게

제주의 양경생 할머니 소리이다. 방아깨비 다리를 잡고 같은 놀이를 하더라도 방아찧는 것이 아니라, 춤추길 기대하는 점에서 독창성이두드러진다. 제주도 '정의' 고을이나 '대정' 고을에 굿이 특히 드셌던지 이웃고을에 굿구경 갈 수 있도록 춤을 추라고 부추긴다. 굿구경 가는데왜 춤을 춰야 할까. 굿판은 춤판이다. 구경꾼이라 하여 춤판을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굿판에서 무당들과 더불어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방아깨비가 다리 힘을 올려서 온몸을 아래위로 움직이듯 굿판에서도 그렇게 도무(蹈舞)를 해야 제격이기 때문이다. 한 다리 없는 땅개비~

이팥 한 섬~ 짊어지고

앵두고개나 넘어간다

서낭대 낭글 비어서

예성강에~ 다리 놨네

그 다리를 건널제~

누구나 누구 건넌나~

영동 사는 박재룡 할아버지 소리이다. 외다리 방아깨비가 온 몸을 놀리는 상황은 절박하다. 아이들이 방아깨비를 거칠게 놀리다가 보면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다리 하나가 떨어져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놀이를 멈추지 않는다. 외다리로 온몸을 가누며 움직이는 방아깨비의 신세가 팥 한 섬 짊어지고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난으로 구체화된다. 서낭대 나무를 베어서 예성강에다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서낭대라면 서낭신이 내리는 신성한 장대이다. 따라서 이 나무로 다리를 놓으면 서낭신의 노여움을 사서 재앙을 겪기 일쑤이다. 그 다리를 건너다간 다리몽댕이가 부러지거나 다리병이 나기 딱 알맞다. 방아깨비의 외다리,서낭대로 놓은 외나무다리, 그 다리를 건너다가 발병이 난 외다리 등이 겹쳐 상승작용을 한다. 부산 고무가 알미는

미역단이나 생길 것 같네

영천 고무가 알미는

쌀가마이나 생길 것 같네

이마빼길 보나따나

징조모님 닮은 것 같네

등때기를 보나따나

양복깨나 생길 것 겉네

발목때이를 보나따나

구두커리나 생길 것 겉네

눈깔이를 보나따나

앤경깨나 생길거 겉네

상주 사는 박기윤 할머니 소리이다. 자식을 낳지 못한 부인이 아들을 얻고자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풀밭에 앉아서 오줌을 누다가 메뚜기 한 마리가 자기 가랑이 사이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잡아들고 자기가 낳은 아들로 착각하며 어르는 노래이다.그런데 간절하게 불공을 드려서 얻은 아이를 두고 엉뚱한 욕망에 사로잡혀 어르고 있다. 부산 고모가 알며는 미역단이나 생길 것 같고, 영천고모가 알면 쌀가마니나 생길 것 같단다. 거기다가 등허리를 보면 양복이, 발목을 보면 구두, 눈을 보면 안경깨나 생길 것으로 믿는다. 그러고보면 아들이 목적이 아니라 아들은 한갓 재물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다른 노래에서는 '이마가 훌럭 버졌는기 고조 할바이를 닮았는가/ 구리 수염이 났는기 증조 할바이를 닮았는가/ 종아리가 휘출한 건 저그 외삼촌을 닮아신가' 한다. 메뚜기 생김새가 조상들을 두루 닮았으니 자기 핏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갖다 붙이면 세상에 닮지 않은 것이 없다. 혈연을 중시하고 아들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는 가부장사회의 모순을 웃음거리로 만든 셈이다. 이렇게 메뚜기를 어르며 즐기다가 놓쳐서 메뚜기가 날아가 버린다. 그러자 요새 자식은 오입부터 즐긴다며 '에미를 마다고 가는 놈을 어느 놈이붙들쏘냐' 하고는 쉽게 자식 꿈을 접어버린다. 자식에 대한 진정한 기대나 사랑이 없기 때문에 단념도 빨리 한다.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행태를보는 것 같다. 권력을 수단으로 이권을 챙기는 것이 목적이므로 시도 때도 없이 대통령을 꿈꾸다가도 속셈만 차리게 되면 포기도 쉽게 한다.

자민련처럼 대통령 자리를 한갓 정파간의 흥정거리로 여기는 불임정당이 그런 보기에 해당된다. 대통령이 되고자 선친묘를 옮기고 유명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어디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김종필은 내각제 실현이 목적인 듯 대망론을 펼치고 있지만, 사실은 이 권력 저 권력에 빌붙어 2인자 행세를 하며 장관 지분이나 챙기고 기득권이나 누리려는 것은 아닌가. 건교부장관을 비롯하여 자민련 몫의 장관들 탓에 김대중 정부가 한두 번 흔들린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공동정부의 자민련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깨치지 못한 모양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국민 여론을 외면하는 미련스러움과 국정쇄신 약속을 계속 묵살하는 오기를 보이면서도 김종필의 눈치 읽는 데는 아주민감하며 그의 의중대로 인사를 하는 데에는 퍽 잽싸기 때문이다. 이번 건교부 장관교체를 두고 인적쇄신을 요구하던 사람들조차 안 한만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김종필 달래기'와 '권력 나눠먹기' 인사행태가 너무나 빤히 드러나는 까닭이다. 정치 구단이 아니라 정치 구닥다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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