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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디지털 영화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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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영혼으로부터 유배되기를 청하며 서울을 방문한 한국계 독일인 안나(김호정 분)의 짧은 여행기. 그 절망의 끝에서 기적같이 아름다운 사랑이 다시 찾아온다. 디지털 영화 '나비'는 그렇게 진행된다.

데뷔작 '이방인'(98년)에 실패한 문승욱 감독의 절치부심작. 문 감독은 "카뮈의 '페스트'에서 바이러스의 힌트를 얻어 '나비'를 만들었다"고 밝힌다. 영화가 그림이나 시처럼 자기표현의 또 다른 양식이라고 믿는 고지식한 감독이 또다시 첫 출발의 자세로 완성한 두번째 영화다.

아직 충분한 공간의 깊이를 필름만큼 담지 못하는 디지털 기술의 한계를 인물 집중으로 해소시켰다.

이 작품이 지난 8월 54년 전통의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젊은 비평가상과 함께 여우주연상(청동표범상)을 받은 것도 디지털의 강점을 십분 발휘한 때문이었다.

안나가 말없이 비행기 좌석에 앉아 깊은 눈으로 서울 거리를 내려다보는 첫 장면에서부터, 물장난을 치며 처음으로 얼굴의 그늘을 지우고 환하게 웃거나 파르르 떨며 샤워장 구석에 구겨지듯 웅크리고 있는 장면 등은 찰나의 관찰로 인물의 내면을 보는 디지털의 타고난 능력을 새삼 수긍케 된다.

한국계 안나는 완전한 망각을 소망한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자기의 영혼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다행히 '나비'의 무대인 가까운 미래의 서울엔 망각의 바이러스가 살고 있고, 영리한 장사꾼들은 망각 바이러스를 찾아떠나는 패키지 여행상품까지 마련해 두었다. 독일에서 온 안나를 가이드 유키(강혜정)와 택시기사 K(장현성)가 맞는다. 납중독자인 유키는 의사의 심각한 경고에도 7개월된 아이를 지우지 않는다. 과거를 잃어버린 K는 기억을 찾아 줄 친지를 찾고 있다. 망각의 바이러스를 나비가 인도하며, 나비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지독한 산성비가 내린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망각의 바이러스는 눈 앞에서 자꾸 사라지는 대신 세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알아간다. 유키는 안나 배의 깊은 흉터를 쓰다듬고, 안나는 유키의 어두운 과거와 아이에 대한 집착을 조금씩 수긍한다. 안나는 이렇게 독백한다. "그녀는 내가 끝낸 곳에서 새로 시작하려 한다". K는 두 여인의 모습에서 유사 가족의 흔적을 발견한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유키는 바닷가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죽는데….

이 영화는 작가주의 SF의 방식, 저예산 영화의 지혜를 보여준다. 13일 개봉.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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