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여년 전 이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는 5천여년 전 문자를 발명하면서 오랜 원시생활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명의 길을 열었다. 시간적·공간적 벽을 허물면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문자는 기억력의 한계를 보완하는가 하면, 문명을 급속도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지구촌이 정보화 시대를 열고, 눈부신 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말과 글에 의한 지식의 축적이 만들어준 최상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말과 글은 민족 문화의 정수이며, 그 나라 정신세계의 뿌리다. 그 민족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사실도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익히 보아 왔다. 이 지구상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문자들이 있다. 대부분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가감돼 완성됐다. 하지만 훈민정음은 창제자·창제 연월일과 그 정신이 명확한 지구촌 유일의 문자라는 점에서 문화사적 의의와 우수성이 두드러진다.
오늘은 555돌을 맞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해 수천년 동안 한자 문명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문자를 갖게 해준 뜻깊은 날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매스컴들은 국적 불명의 조어들을 남발하고 있으며, 각종 광고와 제품 이름에 외국어가 판을 치고, 인터넷을 통한 한글 파괴도 심각한 지경이다. 한글 홀대는 우리 사회 전반에 날이 갈수록 덧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그 주인인 우리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하고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국 하버드대 라이샤워 교수는 '한글은 오늘날의 모든 문자 중에서 기장 과학적인 체계일 것'이라고 했다. 네덜란드의 라이센대 포스 교수도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좋는 알파벳을 발명했다'고 예찬했다. 태국에서 '한국어 전도사'로 통하는 부라파대 파쑥 쿤라와닛 총장이 오늘 정부로부터 한글 유공자로 유일하게 훈장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특허청에 따르면 최근 특허 출원되는 상표에 '참고을' '버들송이' '햇살내음' 등의 고운 우리말을 쓰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올 들어 출원된 상표권 7만2천705건 가운데 7천여건이 그런 경우라니 반가운 현상이다. 우리 속담에 '주인이 구박하는 개는 남도 구박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말과 글을 번창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한글날을 훈민정음 반포를 기리는 날로 여길 게 아니라 우리 것을 지키면서 세계화 시대에 미래지향적인 이상을 가다듬는 날이 돼야 할 것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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