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오늘 그리고 현재

캐나다의 노인 부부가 에드몬튼의 딸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겨울이었으나 날이 맑아서 먼길을 가도 좋은 기후였다. 노인 부부는 가벼운 기분으로 맑은 날씨를 믿고이른 아침 딸의 집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쉽게 깨어졌다. 아직도 많은 길이 남아 있는 중간지점에서 노인 부부는 눈을 만났다. 폭설이었다. 일기예보에도 없는 폭설이었고 그즈음 보기 드문 폭설이기도 했다. 눈은 갈수록 앞을 가렸고 드디어 노인부부가 몰던 자동차는 멈추고 말았다. 멈춘 자동차 위로 눈은 잔인하게 내렸고 두어시간 후 그 자동차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아픔과 감동은 그 다음부터다. 눈이 멎고 그 자동차에서 노인부부의 시신을 꺼내는경찰관들은 모두 소리 없이 울었다. 그 자동차안에는 죽음을 뛰어넘는 따뜻한 인간의 사랑과 의지가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부부의 시신 옆에는 부산하게종이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세금을 낸 종이, 껌 종이, 휴지조각 등 종이라는 종이에는 모두 노인부부의 마지막 글귀가 적혀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쓴 마지막 사랑편지였다. 작은 글씨로 부부는 '너를 사랑한다' '우리는 지금 행복하다'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에게감사한다' '다른 공간에 살더라도 우리는 너를 사랑하고 너의 행복을 빌 것이다' '너의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을…' 등의 따뜻한 마음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관들은 노인부부의 시신보다 그 글귀들을 보고 모두 울고 숨을 죽였다는 보도를 나는 캐나다의 한 신문에서 볼 수 있었다.차창에 눈이 덮이면서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그 무서움과 두려움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으로 발버둥치다 죽음을 맞는 것이 통상적인 예다. 그것이 본능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본능을 뛰어넘는 우수한 인간도 있는 법이다. 그것은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다.나라를 구하거나 한 인간을 대신해서 죽는 자만 위대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죽음 앞에서 비겁하지 않는, 죽음의 눈 구덩이에서 매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딸에게 따뜻한 사랑을 남기기는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무섭다는 이야기 한마디 없이, 살고 싶다는 이야기 한마디 없이 마지막종이의 공간 끝까지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의 미래를 생각했다는 것은 언제 다시 생각해도 가슴을 울리는 일이다.

오래되지 않은 일이지만 미국의 경제상징인 두 건물을 폭파한 비행기 탑승자들이 죽음직전에 전화로 남긴 말들도 모두 가족을 사랑한다는 말이었고 당신 때문에 행복했다는 말이었으며 행복하라는 말들이었다. 가슴이 찡하게 울리며 눈물이 난다. 죽음직전에 가족을 부른다는 사실 오늘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말들이다. 나는 왜 그들을 영웅적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 그들은 영웅이라고.

그러나 영웅적이지는 않더라도 요즈음 우리의 현실에 대한 여유와 마음가짐에 대해 한번쯤 되새겨 봐야할 때가 아닌가 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공격을 시작함으로써 세계는 지금 이미 전쟁중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아직은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이 전쟁은 시간을 끌 공세가 크다.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 나라는 가볍게 구경만 할 처지는 아니다. 신문보도에 지쳐 타성에 빠져서도 안 되는 일이다. 전쟁이니까 나만 살겠다는 이기심이 무성하게 자라서도 안 되는 일이다.모두 바로 오늘 이 순간에 내가 해야할 일에 전력을 기울이며 내 주변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의 무기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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