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농산물의 품질 고급화 외에 생산 지역별로도 경쟁력 비교우위 품목을 개발해 국제 경쟁력을 더 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난 일년간 각종 현지 자료를 분석 종합한 '중국 농촌경제 현황과 농업 경쟁력'이란 논문을 보여 주면서 주중 한국대사관 홍성재 농무관이 또다른 면을 환기했다.
'땅은 크고 생산물은 다양한(地大物博)' 중국이 WTO 가입을 계기로 14억 자체 인구의 식량 문제 해결을 넘어 60억 세계 인구를 대상으로 한 농산물 공급을 지향하고 있다는 얘기인 듯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취재 현장 곳곳에서도 체감할 수 있었다.
생산 지역별 비교우위 작목으로 지목된 대표적인 것은 헤이룽장성(黑龍江省).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지린성(吉林省)의 식량작물, 하이난성(海南省).상하이(上海).베이징(北京).톈진(天津)의 채소류, 산시(陝西).푸젠(福建).허베이(河北).광시(廣西)성의 과일이었고, 최근엔 목축(육류)을 새로운 중점 육성 분야로 지목해 지린성.베이징.상해.네이멍구.랴오닝(遼寧)성을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 이전에도 중국 농산물의 국제 경쟁력이 파괴적인 것으로 드러난 지는 이미 오래됐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농산물 수출은 1980년 43억7천만달러에서 1995년 157억달러로 3배나 증가했다. 그 후엔 대체로 140억~150억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 20년간의 농산물 수출 연평균 증가율은 6.5%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수출 급신장의 바탕은 독보적인 가격 경쟁력.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채소 도매가격을 조사한 결과, 중국산은 한국 것의 몇분의 1씩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추는 8.4분의 1, 마늘은 7.6분의 1, 시금치는 6.5분의 1, 배추는 6.3분의 1, 양배추는 5.7분의 1, 무는 3.2분의 1, 양파는 2.1분의 1… .
과일도 마찬가지여서 사과는 6.1분의 1, 배는 6.9분의 1, 복숭아는 4.1분의 1, 포도는 3.2분의 1, 밀감은 2.4분의 1로 나타났다. 화훼 분야에서도 카네이션.장미.일반 선인장.호접란은 가격 경쟁력이 특출했다.
축산분야는 더했다. 산지 소(500kg기준) 값은 겨우 30만~35만원에 불과, 한국의 10분의 1에도 못미쳤다. 이런 장점 때문에 세계시장까지 겨냥해 축산 분야를 집중육성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이미 세계 3위의 소고기 생산대국인 중국의 소 사육 마릿수는 4년만에 20%나 증가, 작년 초 마릿수는 1억2천마리에 달했다.
돼지고기에서는 더 강세를 보여 이미 세계 1위 생산국이라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작년 초 생산량(4천만t)은 세계 전체의 49.2%를 차지했다. 가격은 100kg짜리 비육돈 기준으로 10만5천원선.
홍 농무관은 "주요 농축산물 19품목 중 채소.과일.곡물.육류 등 최소 10개 분야에서는 중국이 높은 수준의 우위성을 확보했다"고 판단했고, 농수산물유통공사 베이징 농업무역관 정년수(鄭年洙) 관장은 "가격으로 경쟁하기에는 너무 벅찬 상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농업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단번에 체감케 하는 사례는 바로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일부 열린 한국의 쌀시장 상황. 이걸 잠식하겠다고 별러 오던 미국 등은 쌀시장 개방을 잠시 유보해 주는 대신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토록 했다. 최소시장 접근물량(MMA)이란 것이 그것으로, 1995년 5만1천t을 시작으로 매년 분량을 늘려 작년엔 11만4천t으로 양을 늘렸다.
그러나 그 몫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인심은 미국이 잃고 득은 중국이 본 셈. 쌀값(20kg기준)이 한국은 4만원 이상, 미국은 1만2천~1만6천원인 반면 중국은 7천원선에 불과한 때문이었다. 마늘.양파.무.배추 등 채소류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면서 중국은 지금 고품질까지 외치고 있으니 무역 상대국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남음이 있는 것이다. 국무원 주룽지(朱鎔基) 총리까지 이 문제에 가세, 지난 8월 구이저우성(貴州省) 방문 때는 "중국의 최대 위협은 가짜 저질상품의 범람"이라 지적하고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가짜 저질 상품을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다.안팎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한국 농업, 과연 어떤 길을 찾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취재팀이 중국에 가 있는 동안 국내에서는 사실상 쌀값 지지를 포기하겠다고 처음으로 밝힌 것으로 판단되는 정부의 선언이 나왔었다. 그러고는 지금 갑자기 쌀 위기가 물 위로 부상해 농민들을 방황케 하고 있다.
본래 이 시리즈는 10여회에 걸쳐 중국 농업을 살필 예정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급작스레 악화돼 버린 우리 자신의 쌀 위기가 더 다급하다는 판단 때문에 쌀 문제 등에 관한 부분은 또다른 시리즈 '쌀값 추락―농업보루 무너지나'로 통합해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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