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회 중 하나가 눈 앞에 닥쳤다. 바로 대학 진학. 정보가 쏟아지지만 정작 알고픈 정보는 찾을 길이 없다. 대학마다 특성화를 부르짖지만 실체는 모호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진솔한 경험담. 재학생·졸업생 또는 교수가 들려주는 대학의 생생한 모습을 시리즈로 담아 본다. 대학 교육의 현주소를 이들의 눈과 입을 통해 짚어보자. 아울러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학별 특성화 사업도 살펴본다.
군 복무를 마치고 2학년으로 복학 신청하던 날, 전공 선택 때문에 당혹스럽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입학 때 한개뿐이던 계열 내 전공이 3개로 늘어 있었다.한참 고민한 끝에 '컴퓨터 유지관리 전공'을 택했다. 2002년까지 전국에 보급될 컴퓨터는 1천500만대. 켜지지 않는 컴퓨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컴퓨터를 최적 상태로 유지 관리하는 직업은 무한한 가능성을 뜻했다.
학기 초,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담당 교수님은 학생들의 개인별 실력차를 감안해 균형있게 조를 편성했고, 요일과 시간대에 맞춰 컴퓨터 유지관리 센터에 상주하며 네트워크로 연결된 교내 800여대 컴퓨터를 유지·보수토록 했다.
A/S 신청이 들어오면 찾아 가거나 컴퓨터를 가져와 문제점을 해결했다. 매번 보고서를 작성해 함께 모여 발표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말 그대로 체험식 교육이었다. 만족스러웠다.
소문이 퍼지면서 학교 인근 주민들의 전화도 끊이지 않았다. 모두가 우리에겐 소중한 경험이었다. 며칠간 고생하며 컴퓨터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나면 가슴 벅찬 희열이 뒤따랐다.
실력이 모자라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학생들도 자신감을 회복해 나갔다. 컴퓨터 유지관리 센터는 우리에겐 센터 이상의 존재가 됐다. 학교 생활의 터전이었던 것. 작업실로, 때론 휴식 공간으로. 자연히 다른 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유의 유대감이 형성됐다.
대학생활을 추억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농촌 봉사활동이다. 지난 여름 농활은 기존의 틀을 깨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문대만의 조금은 특별한 농활이 가능했던 밑바닥에는 교수님과 학교측의 철저한 사전 계획과 컴퓨터 유지관리 전공 특유의 단결력이 있었다.
의성군내 3개면 농민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기초를 가르치고 농촌지역 컴퓨터를 무상으로 수리해 주는 농활. 설레는 마음으로 3박4일간의 무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낯선 사람과의 어색한 만남, 그리고 찌는 듯한 무더위. 차라리 농사일을 도와달라고 푸념하는 농민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농민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가끔 몇 십리 떨어진 농가에서까지 컴퓨터 수리 요청이 오곤 했다. 도시에선 찾아볼 수도 없는 낡은 컴퓨터가 대부분.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가 고쳐주고 돌아오는 길이면 한동안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떠올라 마냥 즐거웠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이번이 끝이 아니길 바랐다. 내년에도 또 내후년에도 이런 농활이 계속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말 그대로 '현장 투입식 교육'을 통해서만이 자신감을 얻고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후배들은 내게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좋으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자신있게 말해준다. 컴퓨터 유지관리 전공을 택하라고.
◇컴퓨터 유지관리 센터=작년에 교육부로부터 '현장투입식 팀 프로젝트 운영에 의한 컴퓨터 유지관리 전문가 양성' 특성화 대학으로 지정받아 전국 최초로 설립됐다. 교내 800여대 컴퓨터를 유지관리하는 업무를 기본으로 네트워크, 운영체제, 보안, 그리고 하드웨어의 문제를 프로젝트 방식으로 해결한다.
박 주 용(컴퓨터유지관리 전공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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