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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미술관

LA에 있는 폴 게티 미술관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 자동차를 가져가지 않고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미리 파킹 예약을 않으면 주차장이 허락되지 않았다. 미술관 한곳을 관람하기 위해 며칠 전에 미리 주차 예약을 한다는 것이 여행객의 형편으로는 간단치가 않다. 위치가 한적한 곳이라서 인근 어디에 하루쯤 차를 세워둘 만한 곳은 있지만 이 미술관은 도보로 입장하는 사람은 들이지 않는 게 문제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만이 걸어서 들어 갈 수 있는데 근방 숲 속이나 주택가에 무단 주차를 막기 위함일 것이다. 택시를 이용한 승객은 정문을 통과한 다음 차에서 내리게 한다. 그래서 부근까지는 승용차로 가서 근방의 택시를 불러 타고 들어갈 수가 있는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버스 이용객이 있으면 택시는 되돌려보낸다. 아까운 택시 요금만 버린 셈이다.

최근 약간의 변동이 있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는 이 미술관의 다른 정책들과 대조를 이룬다. 빼어난 경관과 섬세하게 배려된 각종 시설물들, 친절한 직원들, 그리고 높은 수준의 소장품들과 각종 프로그램들이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 미술관 밖 마을에도 내부 어디에도 소란과 무질서가 일어나지 않도록 체계 잡혀 있고 관람객들도 따라서 그런 질서를 지켜주기 위해 애쓰며 그 차분함을 즐기게 된다.

관객에 대한 배려가 깊은 미술관일수록 도난이나 훼손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유리를 씌우지 않고 전시한다. 화면을 좀 더 가까이 관찰하려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림에 바싹 붙게 되는데 그럴 경우 의례 관리자가 다가와 호흡이 그림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귀띔을 한다. 사실은 타인의 관람에 방해를 줄 수 있다. 아주 귀중한 작품의 경우 센서가 부착되어 있어서 너무 다가서면 요란한 부저가 울린다. 소리에 놀란 관객은 스스로 실수를 미안해하면서 지금 원작을 직면한 자신을 새삼 확인하고 흐뭇해한다. 메모를 하고싶어 필기구를 꺼내면 안보는 듯 살피고 있던 눈길이 다가와 볼펜이나 만년필 사용이 금지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연필만 가능하고 입구에 비치해 두었다고.

문명이란 인공적이고 그래서 자연스러움을 잃을 수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깊은 신뢰와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 그런 문명의 일단을 본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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