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낙엽의 거리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낙엽의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중략〉…//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프랑스의 시인 레미 구르몽의 시 '낙엽'의 일부다. 가을의 낙엽이 안겨주는 무상과 고독의 이미지는 누구에게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게 하는 낭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을 산들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설악산 대청봉과 팔공산 정상 부근의 단풍 소식은 벌써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제 곧 도회의 숲길에도 단풍에 비끼는 가을 햇살이 눈부시고, 고운 단풍띠를 두른 조락의 풍경들이 아청빛 하늘을 이게 되리라.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자연의 품속에 잠시 안기면서는 아둥바둥 살아가는 삶이 하잘것 없다는 감상에 젖게 되기도 할 것이다.

대구시는 이천로.팔공로.파계로.중앙대로.앞산공원.황금로.두류공원로.국채보상기념공원 산책로 등 19개 구간의 단풍이 물든 인도 35.3㎞를 '낙엽의 거리'로 지정, 오는 25일부터 한달 동안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게 할 모양이다. 이 기간 중 낙엽의 거리에선 시낭송회.시화전.그림그리기.사진전.낙엽 줍기와 밟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들도 마련돼 가을의 정취를 한껏 북돋워 줄 움직임이다.

도심의 낙엽은 그간 처치 곤란의 쓰레기로 여겨지곤 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낙엽이 이리저리 뒹구는 도심지 보도블록 위엔 진정한 가을이 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겨울을 알리는 인사…'라고 노래하기까지 했다. 쓸어도 쓸어도 떨어지는 도심의 낙엽은 환경미화원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줄 뿐 아니라 그 처리 비용 또한 무시 못할 정도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구시의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은 삭막한 현실에 비춰 신선한 느낌을 안겨준다.

우리는 지금 여러가지로 주눅들어 있으며. 불안하고 삭막한 정서 속에 살아가고 있다. 국내외 정세도, 경제 사정도 그렇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자연의 이치보다는 '너만 죽고 나만 살자'는 식의 세태도 덧나기만 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라는 김현승의 시 '가을의 기도'가 간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가을에는 '낙엽의 거리'를 걷는 여유를 가져봄도 좋을 듯 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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