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리즈(3)-농협도 농민도 한숨만...

지난주 시작된 정부 약정 산물벼 수매장에는 수확의 기쁨을 알리는 웃음소리 대신 한숨 소리만 가득했다. 농협의 수매가를 놓고 농협은 농협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불만에 차 있었다. 일반 미곡처리장들도 "한치 앞이 안보인다"고 했다. 지금 농촌을 뒤덮고 있는 것은 어두운 그림자. 농민단체들은 연일 대책회의를 열어 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작년보다 낮은 값=지난 15일 수매에 들어간 성주미곡처리장 경우, 정부 수매 약정분에 대해서는 1등 6만440원, 2등 5만7천760원씩 값이 지불됐으나, 넘치게 갖고 온 벼는 그보다 20%나 적은 4만9천~4만6천원의 값이 매겨졌다. 작년 정부 수매가 5만8천120원 및 농협 수매가 5만6천원보다도 훨씬 낮은 것.

약정분 넘으면 '헐값'

수매를 마친 이모(43.월항면)씨는 "약정 수매량 이상의 벼는 되가져 가야 하나 건조하기도 쉽잖고 앞으로 판로도 불투명해 그 값에나마 줘 버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뒤죽박죽된 뒤 미곡처리장 마다 대처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한 미곡처리장은 가마당 5만원씩에 사 들이던 자체 수매를 정부 약정수매를 핑계로 지난 18일 갑자기 중단해 버리기까지 했다. 비안면 쌍계리 김은성(53)씨는 "이때문에 농민들이 더 동요하고 있다"고 했다.

미곡처리장들의 벼 수매 촉진을 위해 정부.여당이 수매자금 무이자 지원을 결정했지만 여기 대해서도 현장 이야기는 비판적이었다. 의성 봉양농공단지 안의 (주)한가위 미곡처리장 박소영 대표는 "그 많은 돈을 빌리는데 필요한 담보물은 어디서 구하는냐"고 반문하고, "농협이야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민간 미곡처리장에는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수매가 역시 제각각이어서, 의성 금성농협은 4만9천원, 한가위 및 삼안미곡처리장은 5만원, 안계농협은 4만원, 다인농협은 5만1천원에 각각 수매하고 있었다. 안계농협 이상열 상무는 "여기는 추수가 늦어 수매도 이달 말쯤 돼야 본격화될 것이지만 수매가는 4만원으로 내정하고 시장가격에 따라 차액을 정산키로 했다"고 말했다. 다인농협 박점용 상무는 "양만큼은 농민이 원하는 전부를 수매키로 하고 밤 11시까지 수매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차액보전 대책 막막

▨벼 베기 연기도=지난 17일 의성 금성농협 미곡처리장 앞 국도에선 해가 서산을 넘어가는데도 벼를 실은 화물차가 100여m나 길게 늘어 서 있었고, 수매장 곁 간이식당에서는 농민들의 성토가 요란했다.

금성면 만천1리 박재철(66)씨는 "작년엔 정부 매상만도 50가마나 됐으나 올해는 25가마로 줄었다"며, "내년엔 논을 놀리든지 영농회사에 맡길 것"이라고 했다. 의성 가음면 가산2리 박재철(74)씨는 "올해는 그럭저럭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앞으로는 어쩌느냐"고 했다.

의성 봉양농공단지 안의 한가위 미곡처리장에서도 한농 오용백(44) 봉양지회장은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표시했으나 농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나 산물벼 수매가가 낮자 일부 지역 농민들은 "수확 후 말리기도 힘드니 벼가 완전히 마른 뒤 베겠다"며 아예 벼베기를 늦추고 있다. 예천지역 경우 18일 현재 벼베기 실적이 예년보다 크게 저조한 20여%에 불과하며, 지보면 상월리 최기열(61)씨 등은 "베고 싶어도 말릴 곳이나 보관할 시설이 없다"고 했다.

수확이 늦춰진 가운데 지난 18일부터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고 일부 산간지에는 서리까지 내리자 미질이 떨어지는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벼수확 미뤄 냉해도

▨긴장과 고뇌=이미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농민들의 의욕 감퇴와 좌절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나름대로 대책을 논의하지만, 아직은 전망이 뚜렷해지기 힘든 상황인 것.

한농.농민회 등 의성의 7개 농민단체는 지난 17일 군청 회의실에서 수매가 대책회의를 열고 대책위원회도 구성했다. 농협조합장들이 집행위원을 맡고, 참가한 군내 기관단체장들이 대책위원을 맡은 것. 위원장을 맡은 우봉성 안계농협 조합장은 "정부가 떠넘긴 400만 섬이 정부 수매가와 같은 가격으로 수매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나가겠다"고 했다.

상주 한농.농민회.전업농 등도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난 15일 이후 상주농협 임원실에서 장기간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농협의 수매가가 정부가와 너무 차이 나 농협과의 절충은 쉽잖은 상황. 농협은 시청 등의 차액 보전만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청송 군의회도 지난 17일 벼 수매가 인상 및 수매량 확대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채택했다. 그러면서 식량안보론까지 들먹였으나 성과는 역시 미지수이다. 의성 군의회 역시 지난 20일 쌀값 안정과 소비 촉진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해 청와대.농림부.농협중앙회 등에 발송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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