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해광칼럼-동방예의지국의 현주소

최근 발표된 유니세프(UN국제아동특별기금)의 한 통계가 우리를 아연케 했다.청소년이 어른을 가장 존경하지 않는 국가로 아태국가 가운데 한국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에 교사는 아예 한명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친구와 대화할때 선생님이나 학업을 주제로 삼지 않는 최하위국가도 역시 한국으로 밝혀졌다. 어른을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의 응답은 무려 20%로 나타나 아태평균 2%와 비교하면 어른에 대한 비존경도는 10배로 벌어졌다. 이것이 우리 청소년 가치관의 현주소이다.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 조사에는 아태지역 17개국의 9세에서 17세까지 남녀 청소년 1만73명이 참여했고, 우리나라도 5백명의 청소년이 참여하여 1대1의 면접조사를 거쳤다. 이 조사의 신뢰도는 98.8%라니 허탈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어른들을 '매우 존경한다'는 응답은 13%로 17개국중 꼴찌다.

또한 가장 존경 하는 사람 가운데 교사는 한명도 꼽지 않아서 교사존경도 역시 아태지역에서 가장 낮은 국가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대화중에 선생님이나 학업을 주제로 삼는 비율은 15%로 최하위를 마크했다. 전체평균은 무려 53%임을 감안하면 교사가 청소년의 가치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알 수 있다. 닮아야할 역할모델(role model)로서 교사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다.

장차 이 나라를 책임질 청소년들의 신념체계와 가치관이 이정도로 수준이하라는 사실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시아 태평양 연안국 청소년 중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이렇게 저차원의 인생관과 사회윤리를 갖게된 원인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수 없다.

청소년들의 어른 존경도가 아태 17객국중 꼴찌, 존경하는 사람중에 선생님이 최하위, 청소년대화 주제에서 선생님이 역시 최하위를 점유한다는 사실은 동방에서 가장 예절바르기로 뛰어났던 조선(祖先)들의 후예란 인식을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슬프게 한다.

특히 동아시아 3개국 중에서도 가장 유교적 문화 색채를 보존하고 있다는 우리가 일본과 중국에 비교하여 턱없이 윤리의식이 약화된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심각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겠다. 예컨데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우리는 겨우 5%인데 비교하여 중국은 무려 47%이고, 반대로 권위에 대한 무시도가 한국대 중국이 물경 52%대 9%로 밝혀졌다.

결국 동방예의지국이었든 한국은 기존질서나 권위에 대하여 가장 불만이 많고 어른이란 이름의 기성세대가 아태 17국가중 가장 격심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말이 된다.

도대체 이땅의 어른들은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이토록 권위가 추락하고 존엄이 산산히 부서졌단 말인가.

이들이 앞으로 기성세대가 될때 그 가공스런 사회윤리와 황폐한 가족윤리 및 가치관을 상상하면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원인규명은 각양각색이지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서양속담처럼 기성인들의 지극히 왜곡되고 훼파된 가치관과 사회의식 때문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민족혼에다가, 동서로 파열된 분파주의에 중독된 이땅의 병리 현상. 거기에 급격히 도입된 서구적 현대윤리와의 윤활치 못한 접목으로 인한 가치갈등과 아노미현상이 주범이라고 진단할 수 있겠다.

극복방안은 무엇인가. 천태만상의 대안이 제시될 수 있지만 가장 먼저 '가치전도(價値顚倒)가 (transvaluation) 필요하다. 즉 수단가치와 목적가치의 분명한 이분법(二分法)을 가르쳐야 한다. 이땅 기성세대는 너무나 많이 목적론적, 공리론적 삶에 역점을 두고 있다. 보다 의무론적 삶에 조준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보다 덜 합리적이고 보다 더 윤리적 삶에 초점을 두자는 이야기다.

잘 마리탱은 공동선이야말로 권위의 기반이자 권력의 목적이라고 규정했다.

환언하여 정의와 질서, 관용과 협동 등 공동선이 사리사욕에 침잠된 기성세대들의 철옹성 같은 가치의 벽을 전도하지 않는다면 후세들의 전도는 암담할 뿐이다. 이것이 동방예의지국의 현주소이다.

계명대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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