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회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중략〉… 이 모든 걸 이 시대 문학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겠다'. 독일의 작가 하인리히 뵐이 '작가의 임무'를 명쾌하게 정의한 말이다. 그는 또한 '언어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라고도 했다. 오늘날 문학이 안팎의 여러 가지 위협 속에 놓여 있다. 그 가운데도 자유가 위협받는 곳에서 언어는 위협받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3일 오후 2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 소설가 이문열(李文烈)씨의 문학사숙인 '부악문원' 앞에서는 '책반환 장례식'이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이벤트가 연출됐다고 한다. '이문열 돕기 운동 본부'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가진 모임의 회원 30여명이 이씨의 소설책 수백 권을 '운구'한 뒤 좌파 논객의 얼굴사진을 가면처럼 쓴 사람을 세워놓고 세계 문화사에 유례 없는 행사를 치렀다는 것이다.
▲이씨 내외가 강연차 대구에 내려가고 없어 '주인 없는 빈집'으로 들이닥친 이들은 '한 시절 천재작가의 곡학아세를 장송하며'라는 조시를 낭송하는 등 행사를 마친 뒤 책들을 반환하려 했다. 그러나 이씨측 대리인이 거부하자 '고물상에 팔겠다' '독극물'이라는 등의 독설을 퍼부었으며, '이씨의 홍위병 발언은 변형된 색깔 공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씨는 대리인을 통해 사유지인 '부악문원'이 들어오지 말라는 요구 외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진행된 이날 행사에 앞서서는 마을 초입에서 주민들이 저지하는 등 실랑이가 벌어졌으며,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참여 네티즌연대' 회원들이 '홍위병의 지식인 테러와 언론탄압 중단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맞시위를 벌였으나 마찰은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같은 시각 대구문예회관에서의 문학강연에서 '비전문성에 의한 전문성의 억압, 소수가 다수를 위장하는 방식이 바로 홍위병과 닮아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무튼 이번 일을 지켜보는 마음은 씁쓰레할 따름이다. 이씨의 소설책들을 반환하려 한 사람들도 한때는 읽으면서 영혼을 살찌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독극물'로 비하하면서 살아 있는 작가를 생매장하려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연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문인들은 불멸의 언어가 부여해준 소명에 부응해 글을 쓴다. 그러나 이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피켓을 들고 함성을 지르는 사람만 남고 펜과 붓을 쥐고 '자유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려는 사람은 되레 테러(?)를 당하는 세상이니….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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