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산맥을 가다-(3)알타이-(2)후이뚱산 등정

눈인가 구름인가. 몽골알타이산맥의 최고봉 후이뚱산(4,367m)의 정상은 눈과 구름에 가려 끝내 자태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산은 '그래 어디 한번 와봐라'하고 대원들을 부르는 듯 했다. 탐사대는 7월 18일 오후 1시쯤 알타이의 빙하 퍼타느 무슨걸(potony mosongol)이 훤히 보이는 너덜지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산에 오르려면 두가지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나는 저 길고 긴 얼음강인 빙하를 지나야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눈이 허벅지까지 오는 가파른 산허리를 차고 올라야 한다.

대원들은 먼저 끝없이 펼쳐진 빙하를 무사히 지나야 하는 부담감으로 긴 한숨을 내몰아 쉬었다. 빙하속에는 빙하가 얼고 녹으면서 틈이 벌이진 크레바스가 무수히 숨어 있다. 길이는 족히 1㎞는 넘을 듯 하고 그 넓이나 깊이는 아무도 모른다. 크레바스는 한치의 실수라도 있으면 낚아채는 산의 블랙홀이나 다름없다.

가이드 2명과 10명의 대원들은 모레인 지대(빙하위 흙무더기가 있는 지역)를 지나 크레바스지대 앞에서 무사하길 빌어주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안자일렌을 했다. 가이드 뭉크와 하샤트가 앞장을 서고 K2를 등정한 이병철 대원이 맨 나중에 섰다. 벌써 어깨가 아파오고 발이 불편하다. 대원전원이 15㎏이상 짐을 멨으며 대학생들의 짐무게는 20㎏을 넘었다. 한걸음 두걸음 살얼음판을 걷듯 빙하위를 걷다 아니나 다를까. 박영준 대원이 크레바스에 빠지면서 계속해서 대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허리까지 잠기기는 일쑤고 베테랑 산악인 정갑수 대원도 목만 남겨두고 온 몸이 크레바스에 빠져 간신히 헤쳐 나왔다. 다행히 대원들은 안자일렌을 하고 있어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크레바스 하나를 지나면 또다른 크레바스가 기다린다. 특히 눈속에 덮여 있는 히든 크레바스가 대원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크레바스는 영롱한 푸른 빛깔을 띠고 있었으며 그 속에는 팔뚝만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바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고 깊었다.

대원들이 크레바스 지대를 통과하는데는 무려 4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수십개 크레바스를 지났으며 전대원이 크레바스속에 한두번씩 빠져 잠시 넋을 잃었다. 크레바스지대에서 에너지를 소모한 대원들은 크레바스를 지나서도 정상행진을 하지 못했다. 후이뚱산에 12번이나 오른 가이드 뭉크도 스무걸음을 걷지 못해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대원들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더 걸려 BC를 출발한지 8시간 30분만에 해발 3,850m의 AC(어택 캠프)에 도착했다.

AC에서 바라본 후이뚱산의 좌측사면은 100m 이상이나 돼 보이는 커니스(눈처마)가 3곳이나 형성돼 장관을 이뤘다. 밤새 심하게 바람이 불면서 맞은편 산너머에서 눈사태가 나는 소리가 한차례 진동을 쳤다. AC에 오르면서 고소증세가 찾아 온 몇몇 대원들은 밤새 두통, 구토증세로 시달려야 했다.

19일 오전 8시 25분 탐사대장과 취재기자를 제외한 대원 8명과 가이드 2명은 2개조로 나눠 정상 공격에 들어갔다. 1시간 정도 지나자 경사가 가파라지며 청빈(눈이 뭉쳐서 얼음처럼 된 것)이 나타나자 대원들은 아이젠발톱이 잘 박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경사는 산의 왼쪽 사면에 널려 있는 돌무더기 옆을 지나면서 점점 급해져 50~60도가 되는 듯 했다. 그 다음부터는 아이젠 포인트가 아예 박히지 않는 강빙이 있는 곳도 있었다.

경험이 적은 대원들은 체력과 기술이 달려 거친 숨을 몰아 쉬었으며 한사람이 정지하면 모두 따라 쉬게 됐다. 등반도중 눈이 전혀 얼지 않아 무릎까지 빠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몇몇 대원들은 정상공격을 하면서 고소증세가 더해 고통스러워 했다.

정상이 가까웠을 무렵. 바람이 심하게 불고 가스가 차 있어 시계가 20m를 넘지 못하는 듯 했다. 가스는 AC에서 바라봤을때는 구름이다. 잠시 후 기다란 나무 막대기에 파란천이 둘러져 있는 목표물이 눈에 들어 왔다. 성황당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정상임을 알려주는 깃발임에 틀림없었다.

7월 19일 오전 11시 23분. 알타이 탐험대는 우리나라 산악인으로는 처음으로 알타이산 최고봉 후이뚱산을 정복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산의 정상부는 아주 칼날같아 대원들도 비스듬히 몸을 맞대고 서 있어야 할 정도였다. 가끔씩 가스가 걷히면서 타반보그(4,000m고지 이상의 산이 모여 있는 알타이산맥의 핵심)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글=은현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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