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깨진 그릇은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히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오세영 '그릇'

그릇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이다. 완결이라는 단어는 균형과 절제가 전제되어 있다. 균형과 절제가 무너졌을 때 세계는 어떻게 될까? 그릇은 깨어져 살을 베고, 세계는 혼돈 속에서 맹목의 사랑이 넘칠 것이다.

여기서 맹목의 사랑은 파탄을 의미한다. 이 시는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찬사이다. 그러나 '상처 깊숙히서 성숙하는 혼'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상처 속에서 성숙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합리성보다 맹목에 더 가까이 있는 지 모른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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