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인데도 올해만큼 가혹했던 해가 또 있었을까? 경북의 2001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였다. 새해 동이 트자마자 시작된 시련은 올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이때까지 도 계속되고 있어 내년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일일이 손꼽을 수 없을만큼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21세기의 첫 해를 되돌아본다.
◇1월의 폭설 = 1월 7~9일 사이 해가 바뀌자마자 내린 눈은 서설이 아니라 폭설이었다. 성주.김천 등 14개 시군에서 비닐하우스에 큰 피해를 입었다. 나중에 시설채소 값은 좋았지만, 농사를 망친 집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사과 값 폭락 = 과수 농가들도 사과값 폭락으로 한해를 시작해야 했다. 15kg 상자당 1만6천원으로 평년보다 무려 61%나 폭락한 것. 북한에 사과 보내기, 소비 운동 등이 잇따르고야 4월쯤 어려움을 넘길 수 있었다.
◇광우병.구제역 파동 = 유럽에서 발생한 광우병의 파괴력은 축산 농가를 위기로 몰았다. 우리 정부도 1월 말 들어 잇따라 예방조치를 내렸고, 3월 말까지 후유증이 계속됐다. 게다가 구제역 소동까지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방역 특별비상이 2월24일부터 4월 말까지 66일간 계속됐고, 소독 활동은 8월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그 여파는 수출길이 막힌 돼지값 폭락을 불러 와 9월 하순이 되자 경영비를 훨씬 밑돌면서 양돈농가 도산 위기로 치달았다.
소비 촉진과 정부 수매 비축 등 조치가 있고서야 11월 하순부터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수출길 다시 뚫기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돼 있다.
◇호주산 생우 수입 파동 = 축산농가들은 다시 4월 중순 터진 호주산 살아 있는 소 수입 파동의 한복판으로 달려 나가야 했다. 6월까지 대대적 시위와 규탄대회가 잇따랐다. 4, 5월 두 차례에 걸쳐 호주산 1천338마리가 수입됐고 경주가 입식 주대상지가 됐던 것. 수입업자의 도축 결정으로 사태는 2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마늘 수입 갈등 = 비슷한 시기에 농민들은 마늘밭도 갈아 엎었다. 정부의 중국산 마늘.양파 수입 결정 반대 시위가 4월~6월 사이에 잇따른 것. 수입산의 시장 격리 및 제3국 수출 약속으로 사태가 고비를 넘었다.
◇100년만의 가뭄 = 2월부터 심상찮던 가뭄은 기어코 모내기철 논바닥을 갈라 놓고 말았다. 3~6월 사이 강우량은 평년의 31% 수준인 74mm에 불과했고, 경북 북부가 특히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농민들은 물론이고 공무원.군인.경찰관, 심지어 도시인들까지 레미콘차까지 몰고 현장으로 내달렸다. 그 덕분인지 가을 결실은 10년만의 최대 풍작으로 판정받았다.
올해는 9월 들어서도 태풍까지 피켜감으로써 가뭄 사태는 가을겨울로까지 이어져 내년 농사마저 불안케 하고 있는 중이다.
◇동반된 산불 = 가뭄은 산불 홍수를 불렀다. 작년보다 11%나 많은 124건에 이를 정도. 5월에는 안동에서 산림청 진화 헬기가 추락해 3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가뭄과 산불은 송이밭을 파괴해 송이농민들의 피해로 이어졌고, 값이 하도 올라 부자가 아니면 맛조차 못보고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콜레라.적조 = 가뭄이 끝나고 그럭저럭 잠잠해진다 싶던 8월 말, 이번엔 어민들이 큰 타격을 받을 일이 터졌다. 그 달 24일 영천에서 처음 발견됐던 콜레라는 10월 초순까지 수많은 환자를 냈고 횟집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찾아 든 적조는 양식장들을 초토화시켰다. 8월 하순부터 9월 중순 사이 동해안 양식 어민들을 밤잠을 못자고 적조를 지켜야 했다.
◇소 값 사상 최고치 = 11월 하순엔 500kg짜리 큰 소 한마리 값이 525만원까지 치솟으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때문에 소고기 수입이 늘어나고 한우사육 기반 붕괴 우려가 높아져 있다.
◇쌀 농업마저 위기 = 이렇게 곡절 많은 농민들에게 최후의 보루였던 쌀값마저 흔들리는 사상 초유가 사태가 지금 벌어지고 있다. 막 출범한 뉴라운드는 앞날을 더 암울하게 하는 결정타. 내년부터는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할지 농민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 외의 일들 = 낙동강 특별법, 댐 건설 문제 등으로 경북지역민들은 곳곳에서 시위를 계속해 왔고, 일부 지역 갈등 양상까지 보였다. 한켠에선 독도 삽살개 추방을 둘러싸고 경찰과 환경부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오랜 숙원이던 중앙고속도는 오는 14일 역사적인 개통을 눈앞에 뒀다. 수십년 진행돼 온 울릉도 순환도로도 올해 개통됐다. 어둡던 이미지를 개선하고 시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려는 경찰의 노력이 돋보인 것도 올해였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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