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28살 짜리에…

'배달된 사과상자는 보료와 책장뿐인 7, 8평규모의 서재에 차곡 차곡 쌓았다. 천장까지 가득했는데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질렸다. 돈냄새 때문에 어지러워서 잠을 못잤다. 신권(新卷)은 휘발유냄새, 구권은 쾨쾨한 냄새가 나는데 거의 구권인것 같았다. 김우중 회장의 돈이 우리집으로 배달되면 아파트 앞 공중전화로 나가 김홍일씨에게 "우리집으로 전화하세요"라고 전화했고 눈치 챈 홍일씨가 우리집으로 전화하면 "도착했다"고 알려줘 홍일씨가 찾아갔다. 돈은 88년 당시 내가 살았던 서울 강남구 신반포 한신3차 아파트로 배달됐으며 이 돈을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던 김홍일씨가 새벽1, 2시무렵 찾아갔다. 지금 얘기한건 빙산의 일각이다. 97년 대선자금 등 2탄, 3탄을 터뜨릴수도 있다. 또다른 핵폭탄도 있다. 도덕성에 대해서다'

◈'엄청나게 챙겼다더니 사실이군'

대우그룹 상무로 있다가 23억원의 공천헌금을 내고 14대 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발디딘 박정훈씨의 부인 김재옥씨가 월간지에 폭로한 일부와 일간지에서 추가로 밝힌 김홍일 의원과 정치자금에 관한 내용이다. 여론이 발칵하자 다음날 그녀의 남편 박 전 의원은 "서재 천장에 닿을 정도는 아니고 2억~3억씩 들어가는 사과상자 1개씩 3번 전달됐으며 많아야 8억~9억원 이었을 것이다"고 밝히고 "여자눈으로 평생 그런 돈을 본적이 없고 재벌이 보냈다고 하니 그렇게 착각한 모양이나 나도 현장엔 없었다"고 다소 축소한뒤 "공천대가로 23억원을 헌금한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측은 처음엔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력부인했다가 "김재옥씨가 뭔가 크게 착각하고 과장이 좀 있는것 같다"며 톤을 낮추더니 "설사 사실이라해도 정치자금을 둘러싼 당시 상황은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는 묘한 여운을 남기곤 일절 반응이 없다. 김 대통령도 묵묵부답이다. 김홍일 의원은 새해 1월초쯤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나기로 이미 일정이 잡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시중의 여론은 "엄청나게 챙겼다더니 사실이군" 대체로 이렇게 한마디로 축약된다. 쇼크상태의 충격적이라기보다 익히 은연중에 알고 있는게'증거'로 드러난것에 불과하다는 다소 덤덤하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돈까지 포함된 건지 알 수 없지만 DJ정치자금에 관한 얘기는 벌써부터 시중에 갖가지 유언비어형태로 떠돈지 오래이고 '20억+알파'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파문때 DJ가 중국으로 떠나며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집권후에도 약간의 언급이 있었기 때문에 "무슨 새삼스런 얘기냐" 이런 정도이다. 문제는 왜 지금와서 이런 비화가 '부인'의 입에서 폭로가 되며 그것도 '검찰수사'로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느냐하는 점이다. 그건 전적으로 현 정권의 실정(失政)탓이고 '대통령아들'의 처신에 분명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옳다.물론 폭로한 김재옥씨 입장에선 남편의 공천탈락과 김우중씨에 대한 연민에서 그랬다쳐도 국민들 입장은 좀 다르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상식대로 모든게 풀려나가는 투명한 정치가 이뤄졌으면아마 '이런 일'은 묻혀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집권 4년여가 지나면서 무슨 개혁을 어떻게 했길래 터지는 것이라고는 전부 '의혹'에다 돈의 액수도 보통 수천억원이니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냐로 집약된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 취업을 못해 허둥거리는 그 또래인 28살먹은 사기꾼한테 이 나라 권력기관의 한다하는 고위층들이 자식벌 밖에 안되는 청년에줄줄이 얽히고 설켜 있는데다 급기야 몸통으로'대통령아들'을 야당이 지목하고 있는 판국이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조폭출신이니 아니니 하는 사람, 의혹의 중심인물, 대검의 간부 등과 어울려 제주휴가를 보냈다 하더니 이젠 돈봉투가 검찰청사에 마구 뿌려졌다고까지 하는데 어느 국민이 화가 안나겠는가.

◈솔직하고 투명한 매듭이 상생의 길

'나는 아니다'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고 정보기관을 통해서라도 실상을 미리 파악해서 아예 수상한 사람은 만나지도 말았어야 했고 아버지인 대통령도 그걸 나무라고질책했어야 했다. 의심스런 행태를 벌여놓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고소하겠다, 대통령 아들은 휴가도 못가느냐고 되레 큰소리칠 계제인가. 더군다나 왜 1차 수사때는 아무것도없다더니 재수사를 하니 이렇게 혼란스럽게 온갖게 다 튀어나오느냐도 한번 생각해 볼일 아닌가. 검찰이 1차땐 무능했고 2차땐 유능했단 말인가. 누가봐도 무슨 흑막이 있다고 밖에 달리 볼 수 없지 않는가. 작금 돌아가는 형국이 말이다. 막말로 3대 게이트를 보면 벤처사기꾼이 우려낸 돈을 이 나라 정·관계 일부 인사들이 서로 뜯어먹자고 달려든 모양외에 달리 어떻게 선의로 해석할 수 있나. 참으로 외국사람보기에 만망한 작태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과거 일'이 터져 나오니 '오늘일'에 연계해서 더욱 국민들의 '정서'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솔직하고 투명한 매듭'만이 모두가 사는 소박한 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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