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복지시설운영 김상수씨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에 가면 5만평 크기의 공동묘지가 있다. 남양공원. 해발 246m의 야트막한 산에 9천기의 묘가 빽빽이 들어서 있고, 그 산마루 2천 평에 '함께 사는 좋은 세상' 법인 연대 건물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중1천 평은 생활시설이고 나머지 1천평은 전국 복지대학 출신 망자들의 무덤이다. 1970년 이후 복지대학 출신 중 640여명이 사망했고 그중 110명이 이곳에 안장됐다.

'하필 공동묘지 속에서 무슨 복지람…'. 빽빽한 묘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을 올라본 사람은 한번쯤 의구심을 품기 마련이다. '땅값싸고 공기좋다는 뻔한 이유를 늘어놓겠지'. 내심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이 외딴 곳에 건물을 지은 평생교육 복지대학 김상수(67) 학장의 대답은 엉뚱했다.

"물론 땅값 싸고 공기 좋죠.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지와 죽음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다는 말일까.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대문 앞에 굵고 튼튼한 빗장을 지른다고 늙음과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요". 김 학장은 나이를 먹되 행복하게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트로트 가락에 가사를 붙인 그의 '찬로가(讚老歌)'는 듣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지난 여름 떠난 사람, 한 살 나이 더 못 먹고 가셨으니 나이 먹을 때가 좋구나". 그의 '찬로가'는 청산유수로 이어진다. 나이먹는 게 싫어 69세로 죽느니 70세로 넘어가는 게 얼마나 좋으냐는 식이다.

지금까지 노인대학, 주부대학 등에 400번 이상 무료 강의를 하는 동안 늘 이런 노래로 노인들의 생각을 바꿔주었다고 한다."죽음도 두려워 할 일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면 비굴해집니다. 죽음도 사람살이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굼벵이가 매미로 화하듯 사람의 육신은 썩지만 영혼은 또 다른 삶을 이어갑니다. 광대한 우주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김 학장이 이 곳 공동묘지 속에 복지시설을 지은 까닭이었다. 일상에서 수많은 주검들을 보노라면 죽음이 특별할 것도, 우울할 것도 없는 세상살이의 한 과정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죽음엔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러기 위해 바른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쥐 같은 마음을 먹으면 쥐가 되고 늑대 같은 마음을 먹으면 늑대가 된다. 기술을 배운 이는 기술자가 되고 도둑질을 배운 이는 도둑이 되는 것과 같다는 말이었다.

김 학장은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목회자의 길을 걷던 그가 교회를 떠나 사단법인 복지마을 진흥회를 설립한 것은 지난 1970년."울타리 안을 보살펴 줄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울타리 밖의 길 잃은 사람들은 그대로 방치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농촌 목회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갈가리 찢어진 세상을 보았고 교회 울타리안에만 머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교회를 떠나 농촌에 노인복지대학, 주부복지대학, 학습구락부 등 120여개 시설을 세웠다. 산골마을엔 수도를 놓았고 마을회관을 지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본격적인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농촌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그다.

노인복지대학은 전국에 3만명의 재적생을 두었을 정도로 성장했다. 1978년부터는 실비 양로시설, 무료 요양시설까지 운영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여섯번의 장관 표창장과 국민훈장 목련장 등 큼직한 상도 여럿 받았다. 그러나 그를 보노라면 그 대단한 상이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

김 학장은 노인문제에 특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아주 부자이거나 자식마저 없는 노인은 좋든 나쁘든 갈만한 시설이 있습니다. 문제는 보통노인들이지요. 요즘 노인들 대부분이 자식들 키우느라 노년을 대비할 틈이 없었어요. 막상 나이들고 보니 아이들 눈치보며 같이 있기도 뭣하고 어디 마땅한 시설도 없고…그게 요즘 보통노인입니다". 그가 설치한 실비 노인 주거시설은 월 33만4천원에 식사, 숙식, 진료까지 해결된다.

깨끗하고 넓은 방엔 전자피아노, 텔레비전, 가구 등이 설치돼 있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손자손녀들이 놀러와 자고 간다. 적자 운영이 불가피해 상당부분 노인복지대학의 성금으로 운영된다. 김 학장은 아직 시설이 넓지 않아 많은 노인을 모시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지금 그곳에는 66명의 노인이 느긋하게 황혼을 즐기고 있다. 054)933-8050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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