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불언'이란 말이 있다.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다는 뜻. 아름다운 꽃이며 열매며 향기로운 냄새를 가진 나무들은 아무 말 않아도 그 숲으로 길이 난다. 제 발로 찾아 오는 사람 많아지므로 뽐내지 않아도 길이 나겠지 뭐 그런 뜻이다.
지난 토요일 '세계 습지의 날'을 맞이하여 영국인 40여명이 대구를 다녀 갔다고 한다.단지 세계 5대 습지의 하나인 대구 화원유원지 강변에 머물고 있는 철새들을 구경하러 온 것이다.
이곳의 습지에 찾아 오는 아름다운 철새들은 기후조건이 나쁜 영국인들에겐 평생 구경못한 고귀한 자연인 것인지 모르겠다. 이 곳 먼 곳까지 찾아온 영국 사람들 소식을 듣고 정작 이를 모르고 사는 우리들의 심사를 생각하다가 도리불언이란 말을 갖다 부친다. 오늘 우리가 금호강변을 찾아 온 연유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야외 망원경에 비오리가 잡혔다. 백로가 뒤뚱거린다. 흰뺨 검둥오리는 오늘까지 1천458마리째 이곳을 찾아 왔단다. 그러니 풀숲에서 새를 볼땐 거북이처럼 낮게 엉금엉금 기어라, 새들 놀라지 않게, 새들 편안히 찾아와 놀게, 흰옷 빨간 옷일랑 색있는 옷을 삼가야 한다. 머리카락 휘날리지 않게 모자도 살짝 눌러 쓰면 더욱 좋으리 등등은새를 선물 받은 우리 인간들이 최소한으로 갗추어야 할 새에 대한 예의란다.
이제 이 새들을 더 이상 잃지 않으려면 습지를 보존해야한다. 금호강변에 직접 나와서 보라. 습지란 말이 없다.습지에 귀를 대고 한참 입을 다물어보라. 이런 소리가 왜 들려오지 않겠는가. 오만가지 미생물이 살곰살곰 살을불리는 아주 작은 소리, 꿈틀꿈틀대며 소리없이 지르는 살아있는 것들의 숨소리….
그 사이로 바쁜 듯 느리게 조용한 듯 경쾌하게 다가오는 철새의 발자국 소리,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같이 노니는 부부새의 짓거리, 새들이새들을 부르는 소리, 어떤 깊고도 그윽한 깃털 부딪히는 냄새. 도르르 굴러 떨어지는 알 냄새….
자 사그러들어가는 이 습지를 어떻게 살릴건지, 오지 않던 새들을 어떻게 다시 불러 모을건지 조용조용 새들이 달아나지 않게 다가가보자. 그곳에 길이 나있다.
시인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