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못나서 행복했던'설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런던 타임즈(London Times)지가 영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장 행복한 사람' 순위를 보면 3위는 오랫동안의 작품을 완성하고 이제 막 손을 터는 예술가, 2위는 아기를 목욕 시킨뒤 맑은 눈동자를 들여다 보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1위는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다 짓고난 해맑은 얼굴의 어린이로 조사됐다. 돈많은 재벌이나 권력있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삶의 행복에 대한 스탠퍼드대학의 가설적인 분석에는 이런 행복의 기준도 있다. '최소한 냉장고에 무언가 먹을 것이 있고 몸에는 알몸을 가릴 만한 것을 걸치고 있으며 머리위에 지붕이 있는 잠잘 곳을 가진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 지구상의 인류중에 25% 안에 드는 상위층 삶을 사는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 나흘간의 설 연휴를 끝내고 다시 전쟁터 같은 일상속으로 되돌아가면서 어쩌면 문득 이런 상념에 젖을지도 모른다.

나는 친척형제들보다 더 행복한 것일까? 동서들의 행복순위는 나보다 앞일까 뒤일까? 시샘이라기보다는 명절이면 저절로 한번쯤 비교해 보게 되는 숨길 수 없는 인간적 감정이다. 그런 것이 명절끝에 모두가 겪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이야기이기에 가족과 행복에 대해 무언가 생각게 해주는 따뜻한 실화(實話) 하나를 들려드린다.

어느 4형제 집안에 재산가인 시아버님이 마지막 남은 땅을 판 25억원을 형제들에게 불평없이 나눠줘야 할 사정이 됐는데. 시아버님의 속마음은 항상 어렵게 사는 셋째아들을 도와주고 싶긴한데 아버지가 직접 셋째 몫을 특별히 더 챙겨주다가는 지금껏 의좋았던 형제사이에 골이 생길까봐 대놓고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맏며느리에게 돈을 맡기며 알아서 나누라고 내놓았다. 설명절에 때맞춰 맏며느리가 세형제와 동서들을 불러 앉혔다. "아버님이 25억원을 주셨는데 알다시피 우리집과 둘째 넷째 도련님은 이 돈 네등분해서 6억씩 나눠 가져가봤자 기본재산에 큰 변화가 생길 것도 없고하니 셋째에게 다 줘서 한집이라도 제대로 일어서게 해주는게 좋겠다. 장남인 우리가 지분 포기했으니 그리 알아라". 맏동서가 제몫 포기한다는데 아랫동서들이 가타부타할 여지가 없었다.

시아버지는 뒷전에서 '과연 큰 며느리'라며 무릎을 쳤다는 모 의사집안의 실화다. 형제들이 부잣집들이니까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나도 6억정도쯤으로는 재산에 변화없을 정도의 부자라면 그런식으로 몰아줘도 불평않겠다고 큰소리 칠수도 있다.

그러나 복권 갖고 있을 때와 당첨됐을 때 마음 다르듯이 막상 닥치면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은 자기를 먼저 낮추고 비우는 겸허함에서 얻어진다. 그런 교훈은 우리 선조들의 설명절 세시풍속에서도 잘 담겨져 있다. 옛 선조들이 설명절 가족의 행복을 비는 자세의 기본은 자연의 순리나 하늘의 뜻을 경외하는 겸허함에 있었다. 나쁜 것은 새나가고 좋은 것만 걸러달라는 복조리 풍속이나 대문에 '호작도'(호랑이 그림)를 붙이거나 채를 걸어 재액을 쫓는 풍속이 그런예다.

인간의 능력만이 아닌 자연의 힘과 신앙적인 하늘의 섭리에 기대는 겸허함을 통해 행복을 바라고 지키려 했기에 작은 것에도 자족(自足)할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세태는 행복까지도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만하고 그러다보니 자족(自足)에는 끝이 없다.

주식이나 벤처조작을 재테크 지식이라 자만하고 부정한 로비를 정치능력으로 자만하며 허망한 행복을 좇았던 사람들이 그런 예다. 그래서 이번 설날 한국인중에서 가장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4대게이트에 연루돼 해외로 달아났거나 감옥에간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행복이라고 굳게 믿었던 돈더미를 쌓아두고도 조카나 손자에게 세뱃돈 한푼 못줘본 채 설날을 보낸 행복순위 꼴찌의 슬픈사람들이 됐다. 재테크 재주도 없고 실세 형님이나 지체높은 고모부도 없는 못난 처지지만 내나라 내고향에서 세뱃돈 주고받는 쪼그만 기쁨이나마 나눠 즐긴 귀갓길의 백성들에게 이번 설날은 '못나서 행복한' 설날이었다. '독자 여러분, 새해엔 부~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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