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는 비디오 제목처럼 정말 못 말린다. 좀 더 코믹하게 만들면 사람들이 많이 골라가겠다는 게 수민이 생각", "장난에는 재주가 있지만 예의가 부족하고 야한 장면도 좀 나와서 안 좋다는 게 엄마 걱정".
수민(대구 대서초교 3년)이네가 '짱구는 못 말려' 비디오를 빌려본 뒤 쓴 시청일기 내용이다. 거기에는 비디오 제목과 본 날짜, 장르, 시청시간, 같이 본 사람, 보게 된 이유 등은 물론 비디오를 본 뒤의 느낌과 비디오 제작자에게 하고 싶은 말까지 촘촘하게 정리돼 있었다.
동생 정민이는 며칠전 '패트와 매트' 비디오를 보고 언니와 함께 그림일기를 썼다. 주인공 패트와 자동차 그림은 정민이가 그리고 매트는 수민이가 그렸다. 아랫 부분 일기 쓰는 칸은 엄마와 함께 얘기한 것을 수민이가 정리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리를 써야겠다는 게 정민이의 결론"이었다.
수민이네가 이처럼 비디오를 빌려본 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올해 들어서다. 컴퓨터, TV, 비디오, 영화 등 생활 주변에 널린 미디어들에 대해 걱정하던 엄마 문은주(36)씨가 관련 강좌를 듣고 다른 엄마들과 토론하면서 가장 먼저 해 본 프로그램.
"정보화 어쩌고 하면서 생활이 워낙 빠르게 달라지다 보니 애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부모가 잘 모른다고 내버려 두거나 무조건 못 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먼저 배우고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비디오 보기부터 시도한 거죠".
그러면서 문씨는 생각보다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몇 번이나 같은 비디오를 보면서도 별 생각이 없던 아이들이 시청일기를 한두번 쓰면서부터 장면장면을 꼼꼼히 따져서 보고, 스스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판단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수민이는 "엄마 아빠가 일기에 안 좋다고 써준 내용은 왜 그럴까 생각해 보게 된다"면서 "내 생각과는 차이가 있지만 막무가내로 비디오 보는 시간을 줄이라고 하던 예전보다는 훨씬 부모님의 뜻을 잘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민이는 그림일기를 그리는 것 만으로도 재미있어 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으니 그리기도 쉽고, 생각을 많이 하고 나니 글쓰기도 어렵지 않다는 것.
초등학교 시절 일기쓰기는 소재 찾기나 글쓰기의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비디오 하나 보고 그림일기 하나 쓴다면 재미있어 하는 게 당연하다 싶었다. 문씨가 거둔 또다른 성과였다.
비디오 시청일기 쓰기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 TV 시청일기를 쓰도록 한다는 게 문씨의 계획. 비디오보다 TV에 매달리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보는 시간과 내용을 조절하기 쉬운 비디오부터 습관을 들이면 TV 보는 태도나 시간 등도 충분히 조절할 수 있지 않겠냐는 계산이었다.
"어디 엄마 교육 좀 시켜주는 곳 없나 싶을 정도로 요즘 애들은 따라잡기가 힘들어요"라고 투덜거리는 문씨였지만 고민과 실천은 보통의 엄마들을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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