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졸업식 날, 내 외손녀 민정이가 꾀꼬리상을 타 왔다. 꾀꼬리상은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에게 주는 상이라고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에게는 동그라미상, 달리기를 잘 하는 아이들에게는 튼튼이상, 그리고 또 무슨무슨 상이라 하여, 자기와 함께 졸업한 아이들이 누구나 한두 가지씩은 다 상을 탔다고 한다.
상이라고 해 봤댔자, 종이 상장 한 장에, 부상으로 주는 500원짜리 연필 한자루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생전 처음 타 보는 상이라서 그런지, 민정이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상장부터 꺼내 놓고 자랑자랑하였다.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우리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날마다 일기를 쓰게 하고, 정기적으로 아이들의 일기장에 꼬박꼬박 검사도장을 찍어 내 주시곤 했다. 한번은 나를 불러내어 여러 아이들 앞에 세워놓고, 내 일기장 중의 한 대문을 골라 읽어 가면서 크게 칭찬을 해 주셨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그후 수십년 동안 일기 쓰기를 계속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어줍게나마 수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때부터 일기 쓰기를 계속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칭찬 한 번이 이렇게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처럼, 어쩌면 유치원에서 타 온 종이 상장 하나가 민정이를 장차 세계적인 소프라노쯤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칭찬은 이렇게 돈이 들지 않는 값진 선물이다. 이것은 또 성취 의욕을 되살려 주는 에너지원이 된다. 90점 맞은 아이에게 100점을 맞지 못했다고 꾸짖으면, 다음에는 80점이나 70점밖에 못 맞을 것이다. 그러나 60점밖에 못 맞은 아이로 하여금, 다음에 90점이나 100점을 맞게 하려면 잠깐 꾸지람하기를 참고 우선 칭찬부터 해 주어야 한다. 틀린 문제 네 개에 대해 꾸짖지 말고, 맞은 문제 여섯 개에 대해 잘했다고 추어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열 번의 꾸지람보다 한 번의 칭찬이 더 낫다.실직한 남편을 칭찬하기란 쉽지 않다. 대학 입시에 떨어진 아들을 칭찬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실직한 남편을 비난만 한다면 남편은 영원한 실직자가 되어 버리기 쉽고, 입시에 낙방한 아들을 꾸짖기만 한다면 그는 재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남편은 비난만 하는 아내와 담을 쌓게 될 것이고, 아들은 꾸짖기만 하는 어머니와 오래 서먹해지고 말 것이다.상사에 대한 험담은 힘없는 월급쟁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한때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상사에 대한 험담을 안주로 삼기를 좋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때 험담을 같이한 사람은 금새 동지가 되는 듯하지만, 슬프게도 고발자는 반드시 이 가운데서 나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술자리에서 만일 직장 상사나 동료를 칭찬하였다고 하면, 험담을 하고 난 뒤처럼 최소한 배신자 같은 것은 나오지 아니한다.험담을 하고 돌아서면 뒷맛이 개운치 않으나, 칭찬의 뒤끝은 늘 이렇게 깨끗한 법이다.그래서 비난은 소인배의 소행이나, 칭찬은 군자의 취할 대도라 하겠다. '나를 칭찬하는 자는 나의 적, (道吾善者是吾賊)'이라고 한 말이나, '칭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고 한말은, 다 남의 충고를 소중히 여겨 작은 일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라는 뜻이지, 칭찬하는 사람을 적대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명심보감이나 탈무드에서 갈파하고 있는 이 경구들의 속뜻은, 아부와 교언을 경계하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겉모습과는 달리, 사람은 누구나 내심 칭찬받고 싶어 한다. 시정의 갑남을녀치고 도대체 자기를 비난하는 자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를 나쁘다고 하는 자는 나의 스승(道吾惡者是吾師)'이라고 한 말도, 물론 남의 충고를 소중히 여기라는 뜻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서양 사람들도 '사람은 자기를 칭찬해 주는 사람을 칭찬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비난은 적을 만들지만, 칭찬은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이주희(전 원화여고 교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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